- 주소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727-1
- 탐방로그
- 안규홍 선생은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표현의 시초라고 한다. 맨 주먹으로 일본 순사를 진압했던 일을 상징하는 황금주먹 조형물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작곡가 채동선 1901~1953
보성 벌교읍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입학, 홍난파에게 바이올린 배움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후 독일 베를린슈테른쉔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이론 전공
1929년 귀국 후 연주와 창작.교육 활동 병행, 대표곡 '추억','동백꽃','그리워'등
고려음악협회 창설 및 고려합창단 조직 등 활발한 민족 음악 활동
보성 벌교읍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입학, 홍난파에게 바이올린 배움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후 독일 베를린슈테른쉔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이론 전공
1929년 귀국 후 연주와 창작.교육 활동 병행, 대표곡 '추억','동백꽃','그리워'등
고려음악협회 창설 및 고려합창단 조직 등 활발한 민족 음악 활동
정지용 시, 채동선 작곡 '고향'
그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그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1879年 보성 출생 /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
"마침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꾼들을 발로 걷어 차고, 짐짝들을 막 집어던져 불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여...
이걸 보고 못참은 안 대장이 지겟짐을 떡 받쳐놓고 쫓아와서
그대로 주먹으로 대그빡 헐 것 없이 몇 대 쳐분께 그냥 쫙 뻗어불드라여..."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꾼들을 발로 걷어 차고, 짐짝들을 막 집어던져 불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여...
이걸 보고 못참은 안 대장이 지겟짐을 떡 받쳐놓고 쫓아와서
그대로 주먹으로 대그빡 헐 것 없이 몇 대 쳐분께 그냥 쫙 뻗어불드라여..."
일제에 항거, 우리도 나라를 구한다!
1908년 의병장 추대
1910년 대구형무소 순국
담산, 32세 나이로 순국하다.
담산, 32세 나이로 순국하다.
벌교 선근공원에는 벌교 만세운동과 더불어 여러 항일지사를 주제로 한 조형물 등이 있다.
義의 고장 벌교
선근공원
선근공원
안규홍 선생 동상이다.
의로운 주먹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의로운 주먹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안규홍(安圭洪) 1879.4.10 - 1910.6.22
본관은 죽산 자는 청원 호는 담산 전남 보성군 양반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가계가 궁핍하여 어린 나이에 머슴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머슴살이(담살이)라 불렀다.
1907년 담살이 동지들을 규합, 강성인이 이끄는 의병단과 합세해 보성 동소산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08년 4월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1909년 9월 까지 파청, 진산, 원봉전투 등에서 대원 450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1909년 9월 25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죽산 자는 청원 호는 담산 전남 보성군 양반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가계가 궁핍하여 어린 나이에 머슴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머슴살이(담살이)라 불렀다.
1907년 담살이 동지들을 규합, 강성인이 이끄는 의병단과 합세해 보성 동소산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08년 4월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1909년 9월 까지 파청, 진산, 원봉전투 등에서 대원 450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1909년 9월 25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義의 고장 벌교
벌교의 항일만세운동
"모두들 우리와 같이 조선독립을 절규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려는가"
"모두들 우리와 같이 조선독립을 절규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려는가"
벌교만세운동 1919
1919.4.3
시위대 이팔사(二八社) 조직
만세시위조직 결성
1919.4.9
안덕환 지휘하에 벌교 1차시위
이팔사 1대대 시위
시위대 이팔사(二八社) 조직
만세시위조직 결성
1919.4.9
안덕환 지휘하에 벌교 1차시위
이팔사 1대대 시위
1919.4.14
벌교 2차시위및 혜지사(蕙芝社) 조직
이팔사 3대대 시위
1919.4.13
이후 전재된 순천 낙안장 만세운동
이팔사 2대대 시위
벌교 2차시위및 혜지사(蕙芝社) 조직
이팔사 3대대 시위
1919.4.13
이후 전재된 순천 낙안장 만세운동
이팔사 2대대 시위
벌교가 낳은 인물 홍암 나철 1863 ~ 1916
본명 '인영(寅永)'
관직 중 을사조약의 매국대신을 저역한 죄로 귀양살이
이후 정계와 손을 끊고 벌교 제석산에서 수도에 전념
1910년 대종교를 세우고 '나철'로 개명, 무장항쟁 지도자 배출과 교육운동
1916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순국
본명 '인영(寅永)'
관직 중 을사조약의 매국대신을 저역한 죄로 귀양살이
이후 정계와 손을 끊고 벌교 제석산에서 수도에 전념
1910년 대종교를 세우고 '나철'로 개명, 무장항쟁 지도자 배출과 교육운동
1916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순국
"나를 대한제국의 대표로 회담에 참석케 해주시오.
조국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길 순 없소" 1905 포츠머스 조약 당시
조국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길 순 없소" 1905 포츠머스 조약 당시
"조국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길 순 없소." / 1905.9 포츠머스 조약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