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6-4
- 탐방로그
-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6-4 구국운동과 국채보상운동 주도한 금릉학교 터 안내판을 찾았다. 금릉학교와 금서당은 같은 말이다. 금릉은 옛 강진의 별칭이었다. 이곳이 애국지사 영랑 김윤식의 생가 바로 위쪽이었다. 영랑 김윤식도 이 학교를 다닌 학생이었다고 알려져있다. 현재의 금서당 건물은 1950년대에 완향 김영렬 화백이 폐허가 되어 있는 이곳을 직접 보수하여 작품활동을 하는 작업실과 거처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2003년 화백이 작고하신 후에 부인께서 거주하신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琴書堂(금서당) 古屋址(고옥지)
금서당(琴書堂) 옛터
금서당은 현재의 강진중앙초등학교 전신으로, 강진 신교육의 발상지이다. 1905년에 사립금릉학교로 개칭되었고, 1909년 8월에는 강진공립보통학교로 개설되었다. 이후 1914년 현재 해남세무서 강진지서 객사의 위치로 이전.확장된 후, 1926년에 강진읍 평동으로 이전하여 강진중앙초등학교가 되었다. 또한 이곳을 거쳐 간 200여 명의 전교생이 모여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진이 낳은 한국 근.현대 대표 시인 영랑 김윤식도 이곳 금서당 출신으로, 1919년 서울 휘문의숙 시절 구두에 독립선언문을 감추어 강진으로 내려와 강진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현재 금서당 건물은 1950년 이후 완향 김영렬 화백이 반파된 것을 직접 보수하여 유화 작품 활동을 하는 작업실로 이용되었는데, 이곳에서 강진 향토예술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금서당 옛터에서 바라본 강진만의 평화로운 풍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잠깐이나마 삶의 여유로움을 선사해준다.
금서당은 현재의 강진중앙초등학교 전신으로, 강진 신교육의 발상지이다. 1905년에 사립금릉학교로 개칭되었고, 1909년 8월에는 강진공립보통학교로 개설되었다. 이후 1914년 현재 해남세무서 강진지서 객사의 위치로 이전.확장된 후, 1926년에 강진읍 평동으로 이전하여 강진중앙초등학교가 되었다. 또한 이곳을 거쳐 간 200여 명의 전교생이 모여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진이 낳은 한국 근.현대 대표 시인 영랑 김윤식도 이곳 금서당 출신으로, 1919년 서울 휘문의숙 시절 구두에 독립선언문을 감추어 강진으로 내려와 강진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현재 금서당 건물은 1950년 이후 완향 김영렬 화백이 반파된 것을 직접 보수하여 유화 작품 활동을 하는 작업실로 이용되었는데, 이곳에서 강진 향토예술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금서당 옛터에서 바라본 강진만의 평화로운 풍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잠깐이나마 삶의 여유로움을 선사해준다.
완향 김영렬(玩香 金英烈)
1923.8.13. 전남 강진 출생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6-4
1943 일본 미술학원 서양화과 수료
1953~1988 교직생활(국민훈장 수상)
2000.4.21. 명예철학박사 학위 취득(Baguio Art Theological College, Philippines)
1970~1992 한국미술협회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예술의전당)
1980~ 한국미술협회 회원, 국제 I.AA. 회원
1983 전라남도 교육 미술 전시회 초대(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1983 제9회 김영렬 유화 개인전(세종문화회관)
1983~1990 영.호남 미술 교류전 초대
1990 제26회 아시아현대미술전 초대(일본 동경)
1994~1995 '모란촌' 문학동인회 회장
1995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 기념 초대전(제주관광센터 대전시실)
1997~ 강진문화원 부원장
1997~ 원로문예인 복지위원 선정(한국문화에술진흥원)
1998 「남도, 남도사람들」 완향 김영렬, 노화가의 꿈 MBC-TV 방영
1998 광복 53주년 기념 갤러리 회화제(서울조형갤러리/부산호경갤러리)
1988~1992 제11,13,15회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 수상
1998~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집행위원 겸 심사위원 역임
2000.1.15. 미술문화상 수상(아시아미술문화협회)
2003 호주 브리즈번 전시회
2003.11.27. 자택에서 작고
1923.8.13. 전남 강진 출생 /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6-4
1943 일본 미술학원 서양화과 수료
1953~1988 교직생활(국민훈장 수상)
2000.4.21. 명예철학박사 학위 취득(Baguio Art Theological College, Philippines)
1970~1992 한국미술협회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예술의전당)
1980~ 한국미술협회 회원, 국제 I.AA. 회원
1983 전라남도 교육 미술 전시회 초대(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1983 제9회 김영렬 유화 개인전(세종문화회관)
1983~1990 영.호남 미술 교류전 초대
1990 제26회 아시아현대미술전 초대(일본 동경)
1994~1995 '모란촌' 문학동인회 회장
1995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 기념 초대전(제주관광센터 대전시실)
1997~ 강진문화원 부원장
1997~ 원로문예인 복지위원 선정(한국문화에술진흥원)
1998 「남도, 남도사람들」 완향 김영렬, 노화가의 꿈 MBC-TV 방영
1998 광복 53주년 기념 갤러리 회화제(서울조형갤러리/부산호경갤러리)
1988~1992 제11,13,15회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상 수상
1998~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집행위원 겸 심사위원 역임
2000.1.15. 미술문화상 수상(아시아미술문화협회)
2003 호주 브리즈번 전시회
2003.11.27. 자택에서 작고
금릉학교 터
금릉학교 터
관리번호: 50-1-45
관리자:박영숙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20-7
한말 강진지역 교육 구국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금릉학교가 있던 곳이다. 금릉학교는 1906년 9월 강진군수 조중관과 강진 유지들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직후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를 만큼 발전하여 강진 지역 민족 교육을 주도하였다. 교과 과목은 윤리학, 국한문, 역사, 지리 등이었다.
금릉학교 학생들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국채보상금릉협성회'를 조직하고 국채보상금을 모아 황성신문사에 기탁하였다. 또한 금릉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은 1919년 4월 4일 강진읍 만세시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관리번호: 50-1-45
관리자:박영숙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20-7
한말 강진지역 교육 구국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금릉학교가 있던 곳이다. 금릉학교는 1906년 9월 강진군수 조중관과 강진 유지들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직후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를 만큼 발전하여 강진 지역 민족 교육을 주도하였다. 교과 과목은 윤리학, 국한문, 역사, 지리 등이었다.
금릉학교 학생들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국채보상금릉협성회'를 조직하고 국채보상금을 모아 황성신문사에 기탁하였다. 또한 금릉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은 1919년 4월 4일 강진읍 만세시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6-4 금서당 구국운동과 국채보상운동 주도한 금릉학교 터 안내판을 찾았다.
영랑과 다신의 예던 길
(*예던 길 : '가던 길'의 옛말)
영랑과 다산은 민족의 애환이자 민족문화의 자부심이었고, 시대를 초월한 민족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두 분의 고뇌와 철학이 스며있는 이 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시대를 초월한 깊은 공감과 감흥을 줄 것입니다.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걸어 보세요. 발길 닿는 곳마다 영랑의 시향(詩香)과 다산의 향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애국지사 영랑 김윤식의 생가 바로 위쪽이었다.
(*예던 길 : '가던 길'의 옛말)
영랑과 다산은 민족의 애환이자 민족문화의 자부심이었고, 시대를 초월한 민족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두 분의 고뇌와 철학이 스며있는 이 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시대를 초월한 깊은 공감과 감흥을 줄 것입니다.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걸어 보세요. 발길 닿는 곳마다 영랑의 시향(詩香)과 다산의 향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애국지사 영랑 김윤식의 생가 바로 위쪽이었다.
감성 강진의 하룻길 - 금서당 5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