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애국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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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94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의 약력
김형주공은 화도면 상방리 682번지에서 부친 김성권, 모친 박영애의 차남으로 태어나 양도면 조산합일학교 보통과, 홍천합일학교 보습과를 졸업 후 부친에게 한문을 배우며, 농업에 종사하시다.
21세에 기독청년으로 1919년 독립만세 운동에 가담하여 강화군 부내면 고나청리와 신문리의 17일 장날, 약 일만명의 군중을 대상으로 자주독립 시위운동에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다 강화경찰서에 구속된 이후 서울 서대문 형무소로 송치되어 10개월간의 옥중생활을 하시다.
복역 후 조국의 광복까지 독립을 위해 애쓰시고, 기독교장로로서 교인들에게 애국정신을 갖도록 힘쓰시다가 64세를 일기로 돌아가시다.
서기 1992년 4월 13일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시다.
서기 1996년 3월 1일 세움
서기 1898년 9월 21일 생
서기 1962년 10월 29일 소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943 화도초등학교 앞 김해김공 형주 애국지사비(김형주)를 찾아왔다.
상방리 화도초교 앞 비석군
화도면 내에 산재해있던 비석들을 1990년 화도면 고적보존위원회에서 이곳 화도초등학교 앞 공터로 모아놓은 것이다. 총9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강화유수 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불망비, 선정비 등 7기의 비석과 함께 근래에 독립유공자 김형주 등 비석 2기가 더 세워졌다.
金海金公 炯周 愛國志士碑(김해김공 형주 애국지사비)
김해김공형주애국지사비
金海金公炯周愛國志士碑
김형주는 1919년 1만 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조선독립선언서」및「국민회보」라는 문서를 배포하다 일제에 의하여 징역형을 받은 독립운동가로서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화도면민들이 1996년에 세운 비석이다.
金海金公 炯周 愛國志士碑(김해김공 형주 애국지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