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병전투지(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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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 강화의병전투지 전등사 안내판을 찾았다.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假闕),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 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傳燈寺(전등사)
대웅전은 수리 중에 있었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 江華 傳燈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Jeondeungea Temple, Ganghwa / 보물 제178호 / Treasure No. 178
대웅보전은 절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다. 대웅은 법화경에서 위대한 영웅을 뜻하는 말로,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보살은 석가모니불과 같지만 중생교화를 중심으로 말한 것이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내부 장식과 능숙한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조선 중기 사찰 건축물이다.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지붕 처마 무게를 받치는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다. 건물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사람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여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세 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 밑에 새겨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부처를 모신 불단과 불상 머리 위의 닫집* 장식이 화려하다.
강화의병 전투지 - 전등사
강화의병 전투지 – 전등사
관리번호 : 14-1-13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전등사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1908년 10월 강화의병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이다. 강화의병은 1907년 8월 9일 강화진위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해산 군인들이 일제에 항거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강화의병은 이능권의 지휘 아래 1908년 10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일본군 제13연대 소속의 70여명과 정족산 전등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등사는 1908년 7월 30일 이동휘를 중심으로 400여 명의 강화도 군민들이 모여 대부모 한일집회를 개최한 곳이었으며, 이능권이 대동창의진을 조직하여 항일전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강화의병 전투지 - 전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