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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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산39-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공의 휘는 수락이요, 자는 뇌홍이며 호는 율산이고 성은 이씨로서 기선은 학성인이시다. 시조는 충숙공으로 공의 17대조이며 휘가 예이고 자는 중유이며 학파는 호이고 왕명을 받들어 유구국과 일본국에 사신으로 40여 회나 파견되시어 피노인쇄환과 계해조약 등을 체결하시고 관이 자헌대부 지중추원사 세자 좌빈객이시다. 휘 종실은 행호군으로 통신부사가 되시어 일본국에 파견되었으나 대마도 근해에서 풍랑으로 불환하니 조정에서는 예관을 보내어 초혼장을 지내시고 관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이시다. 휘 경연은 공의 11대조로서 호가 제월당이시고 임란에 창의하여 선무원종2등훈에 관이 가선대부 행 동지중추부사이시다. 휘 개 호 청수헌은 9대졸서 유문학행
誼(의)하여 학성이씨 무신보를 창수세보하고 여향인하여 구강서원을 창건하여 흥학에 힘쓰시고 고조는 휘 창발이며 증조는 휘 승덕이고 조 휘는 택중이며 고 휘는 석찬이고 비는 달성서씨 장걸 녀이시다. 공은 1898년 무술8월 22일 신경구제에서 생 고 휘 석진 생 비 려강이씨 수지녀 제3자로 출생하여 무사한 계부에게 출계하였다. 천자가 영명하시고 위용이 당당하여 학업에 정진하여 생양가에 효성을 다하였고 지체를 갖춤에 시종이 여일하였다. 기미년3.1운동이 일어나자 약관20에 신경리 1가 4명과 함께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거사할 뜻을 밝히고 남창시일을 택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니 시장군중이 호응하여 남창3.1운동이 발발하였다. 이에 가담한 전원이 검거되어 공은 징역 6개월의 옥고를 치루고 생고 휘 석진은 수감자에게 사식과 의복을 차입하였다. 광복후에는 학문과 언선사에 전념하시면서 학성이씨 임자보와 제월당공파 갑진보에 서문하였고 만시지탄은 있었으나 1995년 8월 13일 정부로 부터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수훈하니 애국지사가 아니리요. 오호라 공은 일생을 우국지념과 학문에 몰두하시다가 1981년 신유4월 초7일 83로 졸하시니 묘는 온산읍 덕동곡 오좌원이었으나 2003년 계미12월 13일 온양읍 내고산 임좌병으로 이장하였고 배는 영월엄씨 용진 녀로서 성품이 숙덕하고 치가범절에 유색이 없었으며 1979년 기미정월 초8일에 졸하니 묘는 동광이다. 생 5남2녀하니 ······· 후략 ·······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 16-3 애국지사 이수락 선생 묘소 안내판을 찾았다.
애국지사 이수락 공의 묘
애국지사 이수락(李壽洛) 공은 1919년 4월 8일 온양 남창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을 길렁호던 공은 이쾌덕, 이희계, 이용락 등과 만세시위에 대한 의논을 거듭하여 4월 8일 남창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전날 밤을 새워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8일 오후 4시경 장터에 집결하여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배포한 뒤 일제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엿고, 수백 명의 장꾼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거행하였다. 공은 시위대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현장에서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 일로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묘소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 2006년 6월 울산광역시 울주군수
중고산마을회관을 지나서 이곳으로부터 3km지점에 있는 학성이씨 제월당공 재실(동화암)
이수락 선생의 묘소는, 정확한 위치를 조사한 후 탐방해야 할 듯 하다.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 16-3에 있는 애국지사 이수락 선생의 묘소 안내판은 찾았지만 묘소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안내판에 쓰여진 글을 보고서 묘소 위치로 추정되는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161 학성이씨 제월당공 재실 동화당 앞을 찾아왔다.
栗山 鶴城李公之墓(율산 학성이공 지묘)
栗山 鶴城李公 諱 壽洛 之墓(율산 학성이공 휘 수락 지묘)
栗山 鶴城李公 諱 壽洛 之墓(율산 학성이공 휘 수락 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