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4
- 탐방로그
- 작전청의 3.1독립운동 사적비가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4 남천1교 맞은편으로 이전한 것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자주 독립의 기백, 이곳에서 발원하다
언양! 이 땅은 우리 선열들이 울산에서 처음으로 3.1독립만세운동의 피맺힌 함성이 울려 퍼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1919년 4월 2일 언양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남창과 병영등 울산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후손들이 그 넋을 기리고자 1992년 작천정에 사적비를 세우고 2003년부터 해마다 울주군에서 울주청연회의소와 천도교 울산시 교구 및 언양교구가 함께 3.1절 기념행사를 열러 왔습니다. 본 사적비는 작수천 명소화 사업에 편입되어 첫 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진 의미있는 이 자리에 옮겨 세워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2014년 3월 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울주청년회의소
언양! 이 땅은 우리 선열들이 울산에서 처음으로 3.1독립만세운동의 피맺힌 함성이 울려 퍼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1919년 4월 2일 언양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남창과 병영등 울산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후손들이 그 넋을 기리고자 1992년 작천정에 사적비를 세우고 2003년부터 해마다 울주군에서 울주청연회의소와 천도교 울산시 교구 및 언양교구가 함께 3.1절 기념행사를 열러 왔습니다. 본 사적비는 작수천 명소화 사업에 편입되어 첫 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진 의미있는 이 자리에 옮겨 세워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2014년 3월 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울주청년회의소
옥고자 명단 : 이무종 징역 1년6월 / 최해선 징역 1년6월 / 이성영 징역 1년 / 김원룡 징역 8월 / 김락수 징중 사망 / 김정원 징역 6월 / 서태식 징역 6월 / 강기형 징역 6월 / 김한준 징역 6월 / 최한홍 징역 6월 / 허황 징역 6월 / 신동목 징역 6월 / 박채우 징역 6월 / 강재주 징역 6월
부상자 명단 : 김길천 손정분 김종환 정달조
거사 주동자 명단 : 이규장 최해규 강경찬 김교경 이규필 곽해진 이규인 이규천 김철순 황선운
부상자 명단 : 김길천 손정분 김종환 정달조
거사 주동자 명단 : 이규장 최해규 강경찬 김교경 이규필 곽해진 이규인 이규천 김철순 황선운
宣言書(선언서)
작전청의 3.1독립운동 사적비가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4 남천1교 맞은편으로 이전하였다고 해서 찾았다.
3.1 독립운동 사적비
관리번호 41-1-1 / 관리자: 울주청년회의소 /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번지
삼일정신은 대화합의 정신, 민족자주의 정신, 애국애족의 정신, 광명정대한 정신 및 인류공영의 사상 등입니다.
이곳 울산은 3곳(언양, 병영, 남창)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터졌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언양지역입니다.
이곳 사적비의 비문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미년 이월에 당시 천도교울산교구장이었던 김교경 선생은 고종 임금의 因山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 며 三月에는 상경한 이규장교인에게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 교인인 최해규, 이규장, 이규로, 이규천, 곽해진, 유철순氏 등은 유림대표 이무종氏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 하였다.
기미년(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던,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경찬, 황선운, 이규우 등 지사들의 주도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 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칼에 많은 애국자가 순직하거나 체포 투옥되는 희생을 치렀다.
온갖 박해에 시달리다가 님들은 이제 九泉에 머무나니 그 많은 사연을 어찌 筆로 다하리오!
이와 같이 사적비 비문을 보면서,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잊지 말아야겠으며, 애국 애족 정신을 길이 기리고 후대로 하여금 귀감을 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적비는 1996년 언양 삼일독립운동 유족회, 천도교언양교구 및 울주JC, 울산JC, 북부산JC, 신안JC(전남)와의 합동사업을 통해 언양 작천정 인내천 바위 아래 도로변에 조성되었다가 처음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언양시장터 부근인 이곳으로 2014년 이전하였으며, 해마다 선열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3.1절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관리번호 41-1-1 / 관리자: 울주청년회의소 /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번지
삼일정신은 대화합의 정신, 민족자주의 정신, 애국애족의 정신, 광명정대한 정신 및 인류공영의 사상 등입니다.
이곳 울산은 3곳(언양, 병영, 남창)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터졌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언양지역입니다.
이곳 사적비의 비문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미년 이월에 당시 천도교울산교구장이었던 김교경 선생은 고종 임금의 因山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 며 三月에는 상경한 이규장교인에게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 교인인 최해규, 이규장, 이규로, 이규천, 곽해진, 유철순氏 등은 유림대표 이무종氏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 하였다.
기미년(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던,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경찬, 황선운, 이규우 등 지사들의 주도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 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칼에 많은 애국자가 순직하거나 체포 투옥되는 희생을 치렀다.
온갖 박해에 시달리다가 님들은 이제 九泉에 머무나니 그 많은 사연을 어찌 筆로 다하리오!
이와 같이 사적비 비문을 보면서,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잊지 말아야겠으며, 애국 애족 정신을 길이 기리고 후대로 하여금 귀감을 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적비는 1996년 언양 삼일독립운동 유족회, 천도교언양교구 및 울주JC, 울산JC, 북부산JC, 신안JC(전남)와의 합동사업을 통해 언양 작천정 인내천 바위 아래 도로변에 조성되었다가 처음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언양시장터 부근인 이곳으로 2014년 이전하였으며, 해마다 선열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3.1절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三.一 獨立運動 史蹟碑(3.1독립운동 사적비)
작천정에 있을 때에는 사적비 아래쪽에 비문을 새긴 돌이 있었지만,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만들었다.
三.一 獨立運動 史蹟碑(3.1 독립운동 사적비)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우리 고장에서도 구국과 애향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났음에 우리는 그 선열들의 우국애정을 잊지 못하고 그 분들을 경모하고 추념하는 뜻에서 여기 돌 하나에 그 사록을 밝히나니 저 한말의 민족 종교인 동학이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개명되고 다시 흥기하게 됨에 이 고장 상북면 거리에 천도교 울산교구가 창립되어 날로 번창하였는데 기미년 2월에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교경 선생은 고종 임금의 인산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며 3월에는 상경한 이규장 교인에게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 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 교인인 최해규 이규장 이규노 이규천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유림 대표 이무종 씨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기미년 4월 2일 언양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든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병찬 황선운 이규인 씨 등 지사들의 두조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편 전 울산 교구 장인 최해규 선생과 최해선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일경에 의해 예비 검거되었다. 일경들은 시위군중을 총검으로 진압하였으며 저들이 성벽 위에서 쏜 총탄에 의해 한 분이 사망하고 네 분이 총상을 입었으며 수백명이 검거되었으니 형고를 겪은 이가 27명이었으며 또한 의거를 주도한 지사들은 국내외로 피신의 길을 떠났다. 온갓 박해에 시달리다가 임들은 이제 구천에 머무나니 그 한 많은 사연을 어찌 필설로 다하리오. 이제 이 고장의 후손들은 가신 임들의 영령 앞에 옷깃을 여미어 명복을 빌며 후손들에게 애국애향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이곳 산자수명한 간월산 계곡 작천정 입구에 작은 사적비를 세웁니다.
1992년 10월 3일 문학박사 강의수 지음 계림 김정덕 씀
三.一 獨立運動 史蹟碑(3.1 독립운동 사적비)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우리 고장에서도 구국과 애향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났음에 우리는 그 선열들의 우국애정을 잊지 못하고 그 분들을 경모하고 추념하는 뜻에서 여기 돌 하나에 그 사록을 밝히나니 저 한말의 민족 종교인 동학이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개명되고 다시 흥기하게 됨에 이 고장 상북면 거리에 천도교 울산교구가 창립되어 날로 번창하였는데 기미년 2월에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교경 선생은 고종 임금의 인산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며 3월에는 상경한 이규장 교인에게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 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 교인인 최해규 이규장 이규노 이규천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유림 대표 이무종 씨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기미년 4월 2일 언양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든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병찬 황선운 이규인 씨 등 지사들의 두조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편 전 울산 교구 장인 최해규 선생과 최해선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일경에 의해 예비 검거되었다. 일경들은 시위군중을 총검으로 진압하였으며 저들이 성벽 위에서 쏜 총탄에 의해 한 분이 사망하고 네 분이 총상을 입었으며 수백명이 검거되었으니 형고를 겪은 이가 27명이었으며 또한 의거를 주도한 지사들은 국내외로 피신의 길을 떠났다. 온갓 박해에 시달리다가 임들은 이제 구천에 머무나니 그 한 많은 사연을 어찌 필설로 다하리오. 이제 이 고장의 후손들은 가신 임들의 영령 앞에 옷깃을 여미어 명복을 빌며 후손들에게 애국애향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이곳 산자수명한 간월산 계곡 작천정 입구에 작은 사적비를 세웁니다.
1992년 10월 3일 문학박사 강의수 지음 계림 김정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