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1173-94
- 탐방로그
-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1173-94에 위치한 독립투사의 마을(후리마을)을 찾았다.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조선 민족의 항일정신을 일깨워준 수많은 지사들의 정신을 길이 기억하고자 본 표지판이 건립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상북면 후리마을
후리마을은 <뒷마을>이라 하고, 한문으로는 후리(後里)라 표기한다. 여기에 안말과 뒷말의 두 자연마을로 갈라져 있다. 후리의 앞들을 <바들>, <바드래> 또는 <파두(破豆.坡頭)>라 한다. 후리의 뒤편 골짜기에 소목골(牛項谷).소무골이 있는데, 이 명칭은 신라시대때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2016. 6.
후리마을은 <뒷마을>이라 하고, 한문으로는 후리(後里)라 표기한다. 여기에 안말과 뒷말의 두 자연마을로 갈라져 있다. 후리의 앞들을 <바들>, <바드래> 또는 <파두(破豆.坡頭)>라 한다. 후리의 뒤편 골짜기에 소목골(牛項谷).소무골이 있는데, 이 명칭은 신라시대때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2016. 6.
독립투사의 마을, 후리마을
후리마을은 물이 좋고 기름진 땅을 갖춘 미곡창이다. 예부터 언양현의 발상지로, 일제강점기에는 상남면(現 상북면) 면소재지였다. 지화, 후리, 오산마을에서는 독립투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곳은 천도교 사상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3.1만세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1919년(기미년) 4월 2일 수요일 오후 1시, 언양 장날을 맞아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 면에서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그들 손에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사본이 들려있었다. 등사본을 비밀리에 등사해 장터에서 나눠준 사람은 이규장, 이규천, 이규로, 이무종 등 일곱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당시 상남면소에서 등사기를 훔쳐 이무종 집에서 선언문을 등사해 병영과 남창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현재 독립운동가 이규천 선생의 후손이 후리마을에 살고 있으며 독립선언문의 필사본을 간직하고 있다.
후리마을은 물이 좋고 기름진 땅을 갖춘 미곡창이다. 예부터 언양현의 발상지로, 일제강점기에는 상남면(現 상북면) 면소재지였다. 지화, 후리, 오산마을에서는 독립투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곳은 천도교 사상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3.1만세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1919년(기미년) 4월 2일 수요일 오후 1시, 언양 장날을 맞아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 면에서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그들 손에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사본이 들려있었다. 등사본을 비밀리에 등사해 장터에서 나눠준 사람은 이규장, 이규천, 이규로, 이무종 등 일곱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당시 상남면소에서 등사기를 훔쳐 이무종 집에서 선언문을 등사해 병영과 남창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현재 독립운동가 이규천 선생의 후손이 후리마을에 살고 있으며 독립선언문의 필사본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