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2가 6-1
- 탐방로그
- 이길용 기자의 흉상은 중구 만리동2가 6-1에 위치한 손기정 체육공원 손기정 기념관 내에 위치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손기정 체육공원
손기정 기념관
養正中高等學校 校址(양정고등학교 교지)
건국훈장 애국지사 이길용 흉상
이길용 기자 약력
1899.8.15 인천에서 출생
1912. 인천 영화학교 졸업
1915. 배재학당 졸업. 일본 도시샤대 입학
1918. 귀국 후 경성철도국 취임
1919. 상해임시정부 반일전단 수송하다 2년 6개월 복역
1925. 조선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입사
1936. 올림픽 마라톤 제패 손기장 일장기 말소 주도, 기자 해직
1945. 광복과 함께 동아일보 복직, 비상 국민의회 대의원, 조선체육회 상무이사, 야구협회 부회장 등 활동
1950. 6.25전쟁 와중, 북측에 피납 생사불명
주최 : (사)한국체육언론인회, 한국체육기자연맹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국제정구연맹
협찬 : 시티칼리지
조각 : 이용철 조각가
제막일 : 2017.8.25
1899.8.15 인천에서 출생
1912. 인천 영화학교 졸업
1915. 배재학당 졸업. 일본 도시샤대 입학
1918. 귀국 후 경성철도국 취임
1919. 상해임시정부 반일전단 수송하다 2년 6개월 복역
1925. 조선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입사
1936. 올림픽 마라톤 제패 손기장 일장기 말소 주도, 기자 해직
1945. 광복과 함께 동아일보 복직, 비상 국민의회 대의원, 조선체육회 상무이사, 야구협회 부회장 등 활동
1950. 6.25전쟁 와중, 북측에 피납 생사불명
주최 : (사)한국체육언론인회, 한국체육기자연맹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국제정구연맹
협찬 : 시티칼리지
조각 : 이용철 조각가
제막일 : 2017.8.25
일장기 말소, 애국투혼을 기리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으로 당당히 우승, 만천하에 배달겨레의 기백을 떨쳤을 때 동아일보는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우는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의 최대사건으로 평가되는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역 이길용(李吉用 1899~? 호는 파하(波荷)) 기자는 인천 영화학교를 거쳐 서울 배재학당에 진학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이후 일본 도시샤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3.1 독립운동에 자극받아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 철도국에 다니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연결하는 지하조직망에 참여한 사실로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다음 192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됐다. 1930년대 들어 스포츠기사의 가로쓰기와 전문용어의 한글표기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간 그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기자직에서 해직됐다. 광복과 함께 동아일보에 복직한 그는 근대 한국체육사 집대성을 위한 자료수집과 집필에 힘쓰다 1950년 6.25 전쟁 와중에 납북돼 종적을 확인할 수 없는 비운을 맞았다.
정부는 1991년 납북인사 진상조사를 계기로 이길용기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으로 당당히 우승, 만천하에 배달겨레의 기백을 떨쳤을 때 동아일보는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우는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의 최대사건으로 평가되는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역 이길용(李吉用 1899~? 호는 파하(波荷)) 기자는 인천 영화학교를 거쳐 서울 배재학당에 진학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이후 일본 도시샤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3.1 독립운동에 자극받아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 철도국에 다니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연결하는 지하조직망에 참여한 사실로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다음 192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됐다. 1930년대 들어 스포츠기사의 가로쓰기와 전문용어의 한글표기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간 그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기자직에서 해직됐다. 광복과 함께 동아일보에 복직한 그는 근대 한국체육사 집대성을 위한 자료수집과 집필에 힘쓰다 1950년 6.25 전쟁 와중에 납북돼 종적을 확인할 수 없는 비운을 맞았다.
정부는 1991년 납북인사 진상조사를 계기로 이길용기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어서 오라, 너 조선의 아들아.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 손기정을 맞는 동아일보 헤드라인이다. 마라톤 세계제패의 감동이 물결치는 가운데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 머리에는 손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시상식 사진이 실려 있었다. 경기가 한참 지나 일본 아사히 그라프에 실린 이 사진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확신한 이길용 기자는 이상범 화백에게 수정을 의뢰, 은밀하게 일장기를 완전히 지운 지면이 2판부터 발행되었다. 일본 총독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총독부가 발칵 뒤집힌 채 사건주도 기자 이길용을 비롯 사회부장 현진건 등 5명은 언론계 영구추방, 동아일보는 무기정간, 사장 송진우, 부사장 장덕수, 주필 김준연, 편집국장 설의식 등 13명의 제작핵심이 퇴사하는 화를 입었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 손기정을 맞는 동아일보 헤드라인이다. 마라톤 세계제패의 감동이 물결치는 가운데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 머리에는 손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시상식 사진이 실려 있었다. 경기가 한참 지나 일본 아사히 그라프에 실린 이 사진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확신한 이길용 기자는 이상범 화백에게 수정을 의뢰, 은밀하게 일장기를 완전히 지운 지면이 2판부터 발행되었다. 일본 총독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총독부가 발칵 뒤집힌 채 사건주도 기자 이길용을 비롯 사회부장 현진건 등 5명은 언론계 영구추방, 동아일보는 무기정간, 사장 송진우, 부사장 장덕수, 주필 김준연, 편집국장 설의식 등 13명의 제작핵심이 퇴사하는 화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