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3-100
- 탐방로그
- 종로구 청운동 3-100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매주 월요일이 정기휴무일이었다. 탐방 당일이 월요일이라 윤동주문학관 내부를 탐방하지 못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윤동주 선생 시비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윤동주문학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번호: 11-1-36 (지정일: 2015.10.14.) / 관리자: 종로구청장 / 소재지: 종로구 창의문로 119 / 규모: 면적 219㎡
윤동주(1917. 12. 30.~1945. 2. 16.)는 일제 강점기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민족 정신이 강한 지식인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문학에 재능을 드러냈으며,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의 작품을 썼다. 특히 '별 헤는 밤'이 널리 알려져 '별의 시인'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사용이 금지된 우리말로 시를 써, '민족 시인', '저항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이러한 시 창작을 통한 저항 때문에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하던 중 2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울한 식민 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민족 시인 윤동주를 기리기 위해, 종로구는 용도 폐기된 수도 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조성하였다. 문학관을 통해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 정신, 그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고자 한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번호: 11-1-36 (지정일: 2015.10.14.) / 관리자: 종로구청장 / 소재지: 종로구 창의문로 119 / 규모: 면적 219㎡
윤동주(1917. 12. 30.~1945. 2. 16.)는 일제 강점기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민족 정신이 강한 지식인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문학에 재능을 드러냈으며,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의 작품을 썼다. 특히 '별 헤는 밤'이 널리 알려져 '별의 시인'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사용이 금지된 우리말로 시를 써, '민족 시인', '저항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이러한 시 창작을 통한 저항 때문에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하던 중 2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울한 식민 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민족 시인 윤동주를 기리기 위해, 종로구는 용도 폐기된 수도 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조성하였다. 문학관을 통해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 정신, 그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고자 한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 5. 10.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 5. 10.
매주 월요일이 정기휴무일이었다.
탐방 당일이 월요일이라 윤동주문학관 내부를 탐방하지 못했다.
탐방 당일이 월요일이라 윤동주문학관 내부를 탐방하지 못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서시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尹東株(윤동주)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尹東株(윤동주)
종로구 청운동 3-100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