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도창의대군 수택리 집결지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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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846-7
탐방로그
'원수부13도창의대진' 수택리 집결지 기념비를 찾기 위해 구리시 수택동 878 장자호수공원을 방문했다. 해당 사적은 장자호수생태체험관과 장자교 사이에 건립되어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원수부13도창의대진'
1907년 이곳에 모여 국권 회복을 위해 서울로 진격하다.
이를 계기로 40여년간의 항일항쟁 끝에 마침내 8.15광복을 맞이하다.
'원수부13도창의대진'(이하, 13도창의군)' 은 경기도 옛 양주군(현 구리시)에서 결성된 항일의병부대입니다. 1907년 7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로 폐위당하고, 뒤이어 8월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은 의병장 출신 이인영(李麟榮)에게 밀지를 내렸습니다. 밀지를 받은 이인영은 전국의 의병과 의병장, 그리고 대한제국 해산 국군이 결합된 '국민군'으로서 1만여 명의 '13도창의군'을 결성하고, 일제에 맞서 본격적으로 국민전쟁을 전개했습니다. '13도창의군'의 군사장 허위(許蔿)는 수도 진격을 위해 결사대 300명을 선발대로 거느리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 수택리(현 구리시 수택동)에 통제본부를 설치하고, 1만여 명의 '13도창의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이를 사전에 알아챈 왜병과 일대 교전을 벌였으나, 아쉽게도 패배함으로써 '13도창의군'의 서울진격작전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13도창의군' 결성과 서울진격작전은 전국적인 항일전쟁으로서 국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 만주와 연해주 등지의 독립군 결성으로 확산되었고,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궁국적으로 '13도창의군'으로 시작된 국민전쟁은 대한민국 독립을 약속한 최초의 국제문서인 '카이로선언' 쟁취와 8.15광복을 맞이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구리시는 '13도창의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이곳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2020년 12월 구리시 13도창의군기념사업추진위원회
'원수부 13도 창의대진'은 구한말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 의병을 모아 1907년 12월 옛 양주군,
현재 구리 수택동에서 1만여 명으로 결성된 항일의병부대다.
원주를 거점으로 무장활동을 벌이면서도 전국 각도에 일제가 통치하는 서울을 탈환하자는 것을 호소, 의병들을 구리 수택동으로 집결시켰다. 그해 의병 1만명 규모의 부대를 24개 진으로 하는 '13도 창의대진소'로 재편성한다.
허위는 당시 수도 진격을 위해 결사대 300명을 선발대로 거느리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인 현재 구리 수택동에 통제본부를 설치했다.
1만여 명의 ‘13도 창의군’을 기다리다 이를 미리 알아챈 왜병과 일대 교전을 벌였으나, 아쉽게도 패배해 서울진격작전은 실패했다.
'13도창의대진'을 기리는 13도창의군 탑이 망우리 묘지 아래쪽에 건립되어있다.
구리시 수택동 878 장자호수공원 장자못생태계체험관 인근에 위치한 '원수부13도창의대진' 수택리 집결지 기념비를 찾았다,
장자못생태계체험관과 장자교 사이에 건립되어 있었다.
'원수부13도창의대진'(元帥府十三道 倡義大陳) 수택리 집결지 기념비
'원수부13도창의대진'(元帥府十三道 倡義大陳) 수택리 집결지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