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31 감리교신학대학 신석구목사 기념홀 앞 애국지사 신석구 목사 흉상을 찾았다. 주차장을 올라가자 바로 신석구목사기념관이 보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1875 ~ 1906
성령께서 부르심
"동서남북 어디로 갈 방향을 모르고 떠났다. 나는 그때 몰랐지만 그 후 생각하니 그때가 곧 성신께서 나를 부르신 시간이었다.
때는 1906년 음력 10월 어느 날이었다."
1. 신석구 목사의 출생과 성장
1875년 음력 5월 3일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개동(현 충북 청원군 미원면 금관리)에서 아버지 신재기와 어머니 청해이씨 사이에서 2남 3녀중 차남으로 출생.
1907 ~ 1918
신석구 목사의 소명
"참으로 나라를 구원하려면 예수를 믿어야겠다.
나라를 구원하려면 잃어버린 국민을 찾아야겠다.
나 하나 회개하면 잃어버린 국민 하나을 찾는 것이다.
내가 믿고 전도하여 한 사람이 회개하면 또 하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국민을 다 찾으면 나라는 자연스럽게 구원받을 것이다."
1919 ~ 1945
목회지를 놓고 가도할 때 들었던 음성
"네 힘에 알맞으면 네 힘을 의지하기 쉬우나 네 힘으로 감당키 어려움을 알 때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1946 ~ 1950
결사각오의 정신으로 독립운동 참여
"예수 말씀하시기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것이라' 하셨으니, 만일 내가 국가 독립을 위해 죽으면 나의 친구들 수천 혹 수백의 마음속에 민족 독립정신을 심을 것이다.
설혹 친구들 마음에 못 심는다 할지라도 내 자식 3남매 마음속에는 내 아버지가 독립을 위하여 죽었다는 기억을 끼쳐 주리니 이만 하여도 만족한다고 생각하였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31 감리교신학대학 신석구목사 기념홀 앞 애국지사 신석구 목사 흉상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