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511
- 탐방로그
- 서울 강동구 상일동 511 수변공원 상일리 3.1운동기념 테마정원 상일리 만세광장을 찾았다. 1915년 축도 지도에 헌병분견소가 해당위치에 표기된 것으로 보아 당시 상일리 헌병주재소는 2023년 현재 강동구 상일동 259번지 일대 주변으로 추정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상일리 만세광장
1919년 소요사건에 관한 경기도장관 보고 철(1919.3.28)
1919년 3월 27일 옛 광주군 구천면 및 서부면 주민 약 1,000명이 구천면 상일리에 집결하여 만세운동을 벌었다. 이에 일제 헌병이 주민들을 강제로 해산하기 위해 폭행과 발포를 하여 사망자 2명과 부상자 10명이 발생하였다.
1919년 소요사건에 관한 경기도장관 보고 철(1919.3.28)
1919년 3월 27일 옛 광주군 구천면 및 서부면 주민 약 1,000명이 구천면 상일리에 집결하여 만세운동을 벌었다. 이에 일제 헌병이 주민들을 강제로 해산하기 위해 폭행과 발포를 하여 사망자 2명과 부상자 10명이 발생하였다.
서울 동남부 일대 만세시위 지도(1919.3.23. ~ 1919.3.31.)
1915년 축도 지도에 헌병분견소가 해당위치에 표기된 것으로 보아 상일리 헌병주재소는 현재 강동구 상일동 259번지 일대 주변으로 추정된다.
1915년 축도 지도에 헌병분견소가 해당위치에 표기된 것으로 보아 상일리 헌병주재소는 현재 강동구 상일동 259번지 일대 주변으로 추정된다.
"굴레와 희망" / Chains and Hope
2022년 3월 27일 / Stainless Steel / 2.9M(가로) X 2.2M(세로) X 4M(높이)
일제 암흑기 서울 강동·하남 지역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가치를 재조명한 작품으로, 시련을 극복한 민족의 모습과 함께 나무에 맺힌 열매를 통해 희망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2022년 3월 27일 / Stainless Steel / 2.9M(가로) X 2.2M(세로) X 4M(높이)
일제 암흑기 서울 강동·하남 지역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가치를 재조명한 작품으로, 시련을 극복한 민족의 모습과 함께 나무에 맺힌 열매를 통해 희망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그날의 함성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날의 함성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상일리 만세광장 조성 취지문
오늘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우리의 아픈 역사적인 일제의 식민 지배 하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상들에게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3.1운동은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손들에게 잊혀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이에 강동구 상일동에서 펼쳐진 옛 구천면 상일리 3.1만세운동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려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자연과 어울리면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과 함께 나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이 광장을 세웁니다.
2022년 3월 27일 서울특별시 강동구청장
오늘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우리의 아픈 역사적인 일제의 식민 지배 하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상들에게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3.1운동은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손들에게 잊혀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이에 강동구 상일동에서 펼쳐진 옛 구천면 상일리 3.1만세운동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려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자연과 어울리면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과 함께 나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이 광장을 세웁니다.
2022년 3월 27일 서울특별시 강동구청장
구천면 상일리 일대 3.1만세 운동의 경과
서울과 인접한 광주군(廣州郡) 일대에서는 1919년 3월 23일 이후 서울의 영향을 입어 밤에는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낮에는 시위행렬을 만들어 각 면사무소에 집결해 만세시위를 했다. 3월 27일에는 광주군 구천면, 동부면, 서부면의 농민 1,000여 명이 상일리에 집결해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맹렬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현 강동구 상일동)는 경기도 이천, 여주를 거쳐 강원도 원주, 강릉으로 이어지는 경성강릉선의 길목이었기에 일제는 이곳에 헌병주재소를 설치해서 구천면, 동부면, 서부면 3개 면을 관할했다. 상일리는 이 3개 면이 접해 있는 중심지였기에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구천면의 만세운동은 3월 27일 면의 서남단인 길리, 동부면 풍산리 등 5~6곳의 고지에서 시작되어 면의 동북단인 상일리로 발전되었다. 명일리와 암사리 등지를 거치면서 시위 군중 수는 500여 명으로 증가되었으며, 이후 구희서 등이 이끄는 1,000명 이상의 군중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헌병주재소까지 이르렀다. 이에 헌병은 무차별로 총을 쏘아, 서부면 감북리에 사는 안종현(56세)과 감이리에 사는 최천성(23세)이 총을 맞아 죽고 10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일제 측의 문서에도 구천면 상일리 3.1만세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3월 27일 상일리에 인접한 광주군 동부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상일리에서 2km 떨어진 동부면 풍산리에서는 김홍렬 주도로 마을주민 약 20명이 산상횃불시위를 벌였고, 상일리에서 4km 떨어진 동부면사무소 앞에서도 이대헌, 김교영 등의 주도로 약 500명의 인원이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이들 지역은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상일리 3.1만세운동과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지닌 운동이었다.
서울과 인접한 광주군(廣州郡) 일대에서는 1919년 3월 23일 이후 서울의 영향을 입어 밤에는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낮에는 시위행렬을 만들어 각 면사무소에 집결해 만세시위를 했다. 3월 27일에는 광주군 구천면, 동부면, 서부면의 농민 1,000여 명이 상일리에 집결해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맹렬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현 강동구 상일동)는 경기도 이천, 여주를 거쳐 강원도 원주, 강릉으로 이어지는 경성강릉선의 길목이었기에 일제는 이곳에 헌병주재소를 설치해서 구천면, 동부면, 서부면 3개 면을 관할했다. 상일리는 이 3개 면이 접해 있는 중심지였기에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구천면의 만세운동은 3월 27일 면의 서남단인 길리, 동부면 풍산리 등 5~6곳의 고지에서 시작되어 면의 동북단인 상일리로 발전되었다. 명일리와 암사리 등지를 거치면서 시위 군중 수는 500여 명으로 증가되었으며, 이후 구희서 등이 이끄는 1,000명 이상의 군중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헌병주재소까지 이르렀다. 이에 헌병은 무차별로 총을 쏘아, 서부면 감북리에 사는 안종현(56세)과 감이리에 사는 최천성(23세)이 총을 맞아 죽고 10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일제 측의 문서에도 구천면 상일리 3.1만세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3월 27일 상일리에 인접한 광주군 동부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상일리에서 2km 떨어진 동부면 풍산리에서는 김홍렬 주도로 마을주민 약 20명이 산상횃불시위를 벌였고, 상일리에서 4km 떨어진 동부면사무소 앞에서도 이대헌, 김교영 등의 주도로 약 500명의 인원이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이들 지역은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상일리 3.1만세운동과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지닌 운동이었다.
구천면 상일리 일대 3.1 만세운동을 이끈 분들
김경배(金慶培)
● 1887~1948,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
● 구천면 상일리에 사는 김경배는 상일리 3.1만세운동 당시 맨 앞에서 헌병주재소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 일본 헌병이 총구를 입에 넣고 발사해서 크게 부상을 당했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 재한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구천면'이라는 지명으로 인명이 잘못 기록된 34세 농부가 헌병의 발포로 인해 턱을 관통한 부상을 당했다고 나오는데, 이 사람이 김경배로 추측된다. 그 후 '총상으로 험상 궂은 김경배는 '만세참봉(萬歲參奉)'이라고 부르며 존경했고, 1948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3.1절만 되면 당시 구천국민학교(현 서울상일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상일리 3.1만세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구희서(具羲書)
● 1872~1951,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감일리 246
● 1919년 3월 27일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서부면사무소와 상일리 헌병주재소 앞에서 지역민 40여명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언도받았으며,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의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통령 표창(1992)
김경배(金慶培)
● 1887~1948,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
● 구천면 상일리에 사는 김경배는 상일리 3.1만세운동 당시 맨 앞에서 헌병주재소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 일본 헌병이 총구를 입에 넣고 발사해서 크게 부상을 당했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 재한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구천면'이라는 지명으로 인명이 잘못 기록된 34세 농부가 헌병의 발포로 인해 턱을 관통한 부상을 당했다고 나오는데, 이 사람이 김경배로 추측된다. 그 후 '총상으로 험상 궂은 김경배는 '만세참봉(萬歲參奉)'이라고 부르며 존경했고, 1948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3.1절만 되면 당시 구천국민학교(현 서울상일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상일리 3.1만세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구희서(具羲書)
● 1872~1951,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감일리 246
● 1919년 3월 27일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서부면사무소와 상일리 헌병주재소 앞에서 지역민 40여명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언도받았으며,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의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통령 표창(1992)
이대헌(李大憲)
● 1883~1944,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
● 1919년 3월 27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독립만세운동 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산정(山頂)에 올라가 봉화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하산 후 2회에 걸쳐 수십명의 시위군중을 집결시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1990)
김교영(金敎永)
● 1858~1929,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
●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의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의 김용문과 함께 지역민 9명을 불러 모아 이들을 인솔하고, 동부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언도 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1994)
김홍렬(金弘烈)
● 1866~1948,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
● 1919년 3월 26일과 27일에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집하여, 20여 명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언도 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2019)
● 1883~1944,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
● 1919년 3월 27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독립만세운동 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산정(山頂)에 올라가 봉화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하산 후 2회에 걸쳐 수십명의 시위군중을 집결시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1990)
김교영(金敎永)
● 1858~1929,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
●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의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의 김용문과 함께 지역민 9명을 불러 모아 이들을 인솔하고, 동부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언도 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1994)
김홍렬(金弘烈)
● 1866~1948,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
● 1919년 3월 26일과 27일에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집하여, 20여 명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언도 받았다. 건국훈장 애족장(2019)
그날의 함성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상일리 만세광장
상일리 만세광장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구천면 상일리 인근 헌병주재소(현재 상일동 259일대)에서 펼쳐진 주님 1,000여 명의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기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주민의 염원을 담아 독립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구천면 상일리 인근 헌병주재소(현재 상일동 259일대)에서 펼쳐진 주님 1,000여 명의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기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주민의 염원을 담아 독립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남긴 글
독립운동가의 남긴 글
3.1운동 경과
● 1910.8. 경술국치,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
● 1917.7. 신규식, 박은식, 신채효,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이 국민주권론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 발표
● 1918.1. 윌슨이 민족자결 원칙을 포함한 14개조 평화원칙 발표
● 1918.11. 독일항복으로 제1차 세계대전 종료
● 1919.1. 제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 시작
● 1919.2.8.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 발표
● 1919.3.1. 민족대표가 서울 종로구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 진행. 서울을 비롯한 7개도시에서 만세운동 전개
● 1919.4.11.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3.1운동 배경
●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제국주의 질서 변동
●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
● 1910년 이후 10년간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
● 1919년 1월 갑작스런 고종의 사망
●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
3.1운동 준비
●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와 학생층이 연합
● 비폭력, 대중화, 일원화 원칙에 입각하여 서울 및 전국 지역의 만세시위 준비
● 독립선언서 2만1천여 매 인쇄 및 전국 배포
3.1운동 전개
●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동시에 일어남
● 3월 중순 전국 각지로 확대되어 4월초에 초고조에 이름
●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식인, 학생, 농민, 노동자, 상인 등 전 계층이 참가
● 장터 만세시위, 상인들의 철시, 학생들의 동맹휴학, 횃불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
● 만주와 연해주, 일본, 미주 지역의 동포들도 만세운동에 동참
3.1운동 결과와 의의
● 총 집회 횟수 1,542회. 참가자 202만 3,098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체포된 사람 4만 6,948명. 불탄 교당 47개소, 불탄 학교 2개교, 불탄 민가 715호
●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 정책에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3.1운동은 이후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등 아시아 각국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줌
● 1910.8. 경술국치,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
● 1917.7. 신규식, 박은식, 신채효,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이 국민주권론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 발표
● 1918.1. 윌슨이 민족자결 원칙을 포함한 14개조 평화원칙 발표
● 1918.11. 독일항복으로 제1차 세계대전 종료
● 1919.1. 제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 시작
● 1919.2.8.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 발표
● 1919.3.1. 민족대표가 서울 종로구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 진행. 서울을 비롯한 7개도시에서 만세운동 전개
● 1919.4.11.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3.1운동 배경
●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제국주의 질서 변동
●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
● 1910년 이후 10년간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
● 1919년 1월 갑작스런 고종의 사망
●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
3.1운동 준비
●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와 학생층이 연합
● 비폭력, 대중화, 일원화 원칙에 입각하여 서울 및 전국 지역의 만세시위 준비
● 독립선언서 2만1천여 매 인쇄 및 전국 배포
3.1운동 전개
●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동시에 일어남
● 3월 중순 전국 각지로 확대되어 4월초에 초고조에 이름
●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식인, 학생, 농민, 노동자, 상인 등 전 계층이 참가
● 장터 만세시위, 상인들의 철시, 학생들의 동맹휴학, 횃불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
● 만주와 연해주, 일본, 미주 지역의 동포들도 만세운동에 동참
3.1운동 결과와 의의
● 총 집회 횟수 1,542회. 참가자 202만 3,098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체포된 사람 4만 6,948명. 불탄 교당 47개소, 불탄 학교 2개교, 불탄 민가 715호
●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 정책에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3.1운동은 이후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등 아시아 각국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줌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은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신익희(海公 申翌熙, 1894~1956)
나라는 반드시 완전 독립되어야 하고, 민족은 만드시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반드시 자유 평등하여야 한다.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은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신익희(海公 申翌熙, 1894~1956)
나라는 반드시 완전 독립되어야 하고, 민족은 만드시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반드시 자유 평등하여야 한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심훈(沈熏, 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심훈(沈熏, 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
윤동주(尹東柱) 1917~1925, 시인, 독립운동가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안동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상일리 만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