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894-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좌성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와 관련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부산포 개항가도
좌성초등하교 옆 부산포 개항가도의 이바구길 110이다.
저 위에 최천택 선생의 묘비가 보인다.
독립투사 최천택 선생(1896~1961) 1896년 6월 1일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진초등학교를 거쳐 부산공립상업학교(전 부산상고,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산상고 2학년(17세)때,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국사책 '동국사기'를 등사기로 인쇄하여 학우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체포 구굼된 것을 시작으로 절친한 친구이자 구국 동지인 박재혁 의사와 함께 부산경찰서 폭파사건(1920.9,14) 등 33년 동안 무려 54회나 체포, 구속,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동지의 이름이나 투쟁행적을 고해 바쳐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고 동지와의 의리와 신뢰를 소중히 여기고 약속을 생명처럼 지켜내는 올곧은 성품과 기개를 지닌 애국투사이다.
최천택 선생의 묘비는 있지만, 묘소는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이 없다. 멸실된 것으로 보인다.
박재혁을 기다리는 최천택 선생 일제 강점기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거사를 함께 했던 박재혁 의사와 최천택 선생은 각각 범일동과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상고(현 개성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막역한 사이였다. 최천택 선생은 부산 경찰서 폭파 사건 후 운명을 달리한 박재혁 의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증산의 공동묘지에 묻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애환이 담긴 이곳에 동물원 사업(1961년 5월~1963년 6월)이 추진되면서 박재혁 의사의 묘는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 증산공원 인근 옥성사에 남아 있는 최천택 선생의 묘비만이 고향을 잊지 못하는 박재혁 의사의 넋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박재혁을 기다리는 최천택 선생 일제 강점기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거사를 함께 했던 박재혁 의사와 최천택 선생은 각각 범일동과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상고(현 개성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막역한 사이였다. 최천택 선생은 부산 경찰서 폭파 사건 후 운명을 달리한 박재혁 의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증산의 공동묘지에 묻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애환이 담긴 이곳에 동물원 사업(1961년 5월~1963년 6월)이 추진되면서 박재혁 의사의 묘는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 증산공원 인근 옥성사에 남아 있는 최천택 선생의 묘비만이 고향을 잊지 못하는 박재혁 의사의 넋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펜스 위쪽이 좌천체육공원인데, 이곳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蘇庭 崔天澤 先生 之碑(소정 최천택 선생 지비)
蘇庭 崔天澤 先生 之碑(소정 최천택 선생 지비)
제국주의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도로 찾아 억눌리고 굶주리는 민족의 설음을 씻으려고 평생을 걸어서 그네들과 싸우셨다. 오순도순 잘 살고 늘어가는 나라와 겨레의 살림살이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이면 작거나 크거나 간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을 다하시었다. 몸 가지심이 맑으셨고 옳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데는 성난 범을 방불하게 하셨으나 너그러움과 사랑이 한량이 없으시었다. 동강나고 페어지지 않는 민족의 운명을 서려워하시고 때로는 탁주를 벗삼아 그 시름을 달래기도 하시고 비를 들고 마당을 쓰시고 동전을 셈하는 장사를 돌보시면서도 민족의 형편을 시름하시던 님 소정 최천택 선생 여기에 고이 잠드시고 계신다. 서기 1965년 12월 5일 천우일사 세우다.
부산 동구 좌천동 745-1 좌천체육공원, 부산포 개항가도에 독립운동가 최천택의 묘비가 있다.
지도상으로는 좌천체육공원과 증산공원이 붙어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좌천체육공원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좌성초등학교 옆 이바구길로 찾아가야겠다.
좌천체육공원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좌성초등학교 옆 이바구길로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