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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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 4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달구벌대종
대구 중구 동인동2가 42 국채보상기념공원
국채보상기념공원 안내도
임금과 백성은 비록 존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실상은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요,
백성과 하늘은 비록 상하의 구분이 있으나
그 실상을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곽재우
나는 날마다 세 번 내 자신의 몸가짐을 반성한다.
하늘을 섬기는 일에 극진하지 않았는가?
임금과 어버이를 위하는 데 다하지 않았는가?
몸가짐을 다잡는데 바르지 않았는가?

이언적
양심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
청년이 비겁해지면 나라가 위태롭다.

서상일
흥하고 망하는 것은 지나간 일을 거울삼을 만하고,
아름다움(좋고)과 미운 것(나쁜 것)은
마땅히 장래에 본보기가 될 것이다.

서거정
한 때의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종 변치 않고
우뚝 서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황
건립문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눈부시었다. 여학생들은 물론 가정의 부인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성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지금까지 역사의 뒷면에 있던 여성들이 나라의 위기에 당면하여 역사의 전면에 뛰쳐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남일동 7부인회는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함으로써 그 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뒤를 따르를 기폭제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 근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외환위기때의 금 모으기 운동의 전형이 된 것이다. 우리는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여기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경고 아 부인동포라〉라는 역사적인 격문과 함께 전국 28개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의 이름을 돌에 새겨 청사에 길이 남긴다.
2006년 2월 21일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효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경고 아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동안 없아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사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니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 중 일물이 아니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 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삼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심이 천만행심.
정미 정월 십일일(1907년 2월 23일)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정운갑 모 지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병규 처 정씨 은장도 일개 두냥중
정운하 처 김씨 은지화 일불 한냥 구돈중
서학교 처 정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석균 처 최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
서덕균 처 리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둔중
은가지 삼개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등 일개 두냥 구돈중.

경고(警告) 아(我) 부인동포라.
규문(閨門)
삼종지의(三從之義)
대전(代錢) 구취(鳩聚)
화육중일물(化育中一物)
일신소존(一身所存)
물구(物拘)
혈심의연(血心義捐)
청장(淸帳)
천만(千萬)행심(幸甚)
경고 아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동안 없아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요. 듣사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니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 중 일물이 아니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 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삼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심이 천만행심.
정미 정월 십일일(1907년 2월 23일)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정운갑 모 지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병규 처 정씨 은장도 일개 두냥중
정운하 처 김씨 은지화 일불 한냥 구돈중
서학교 처 정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석균 처 최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
서덕균 처 리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둔중
은가지 삼개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등 일개 두냥 구돈중.

경고(警告) 아(我) 부인동포라.
규문(閨門)
삼종지의(三從之義)
대전(代錢) 구취(鳩聚)
화육중일물(化育中一物)
일신소존(一身所存)
물구(物拘)
혈심의연(血心義捐)
청장(淸帳)
천만(千萬)행심(幸甚)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
서울 : 대안동국채보상부인회, 부인감찬회, 국채보상여자의성회
경기도 : 인천국미적성회, 김포검단면국채보상의무소, 안성군국채보상부인회, 남양군부인의성회
충청도 : 진천군국채보상부인회
전라도 : 금산봉황정부인회, 제주삼도리부인회, 제주함덕리국채보상기성회
경상도 : 대구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 부산항좌천리감선의연부인회, 부산창의소단연동맹부인회, 영도국채보상부인회, 수정동부인의연회, 진주애국부인회, 진주애국상채회, 창원항국채보상부인회, 경주군국채보상부인회
황해도 : 안악군국채보상탈환회
평안도 :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 삼화항비석동예수교부인국채보상회, 선천군부인의성회
함경도 : 청북강계부인급수보상회, 영흥군국채보상감반회
기타 : 연안이씨문중부녀회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사에 길이 빛날 구국 정신의 결정이다. 1907년 1월 29일, 애국 계몽 단체인 대구 광문회(회장 김광제)에서 서상돈 선생이 건의함으로써 첫 횃불이 올랐다.
"일본 차관 1300만원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으니, 담배를 끊어서라도 국민의 힘 으로 국채를 갚아 국권과 국토를 보존하자"는 외침에 200여 회원들은 분발하여 즉각 전국적 으로 실행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2월 21일 북후정(北堠亭)에서 열린 「국채보상 대구 군민 대회」에는 수많은 시민이 다투어 참가했으며, 남일동에 사는 부인 일곱사람이 패물을 바침으로써 전국여성국채보상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이름 없는 걸인으로부터 고종 황제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으로 참여하는 구국 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이 비폭력 항일 정신은 뒷날 3.1운동과 물산 장려운동 등으로 이어져 우리의 소중한 정신 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