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천 묘

4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탐방로그
김명천 묘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1묘역에 있으며, 묘역번호는 3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김명천(金明天) 1916~1999 / 묘역번호 : 3
.훈격 :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운동계열 : 광복군, 함북 회령
.안장일시 : 1999년 7월 22일
광복군 제2지대 대원으로 항일독립전쟁에 참전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끼친 정기는 천추에 빛이 되어 길이 청사에 남아 영세에 사표가 된다 여기 조국의 장래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항일 독립전선에 헌신하여 광복군이 되어 구국 항일투쟁에 신명을 바쳤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장교가 되어 한국동란에 참전하여 빛나는 공훈을 세워 구국의 사명을 다한 분이 여기 잠들어 계시다. 이 분이 바로 애국지사 송현 김명천 선생이시다. 선생은 김수로왕 경파 후손인 한학자 김해 용상공과 전주 이숙란 여사의 장남으로 1916년 9월 11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출생하셨는데 준수한 풍모에 총명과단하고 정의감이 강하였다. 기미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양친은 왜적들의 극심한 강압과 학대를 피하여 4세이 전가족이 북만 합이빈으로 망명하였다. 유시에는 철령 육영학교와 합이빈 영실학교에서 공부하셨고 중국성립고등학교에서 수학 중 1931년 침략주의 일본은 만주사
변을 일으켜서 만주 전성을 점령하고 이 교육기관마져 폐쇄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구국 항일독립의식을 양친으로부터 감화받은 선생은 그 유지를 받들어 1932년 5월 17세때 동창생 2명을 규합하여 항일구국전선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길림성 동북 항일연합군 제24여단에 입단하여 이사성장의 휘하인 양상신의 독립단 무술대에 배속되어 종군하였으며 동년 9월 일군의 공격으로 후퇴 철수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선생은 선봉대가 되어 백병전으로 적군에게 큰 타격을 주고 철수진로를 성공적으로 개척하였다. 그러나 왜군 대부대의 끈질긴 추격으로 1932년 12월 소련으로 월경하여 시베리아의 긴 철도를 따라 장도행군하여 이쿠츠크에 도착 3개월간 체류 중 흑룡강성 철혈구국군 마점산 부대와 독립단 무술부대 참모장 이범석 장군과 합류 과정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김중한 지사의 요청에 호응하여 선생과 부대원이 함께 광복군으로 활약하는 동기가 되었다. 1933년 4월 다시 월경하여 중국 서북 신강성에 도착 동년 5월 부대를 재편하여 신강 변방군으로 호칭하였다. 동년 8월 회교족 마중영 반란군이 폭동을 일으켜 후방 신강성 적화시를 침공하자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천산작전에 참여하여 3개월간 악전고투 끝에 격퇴시켰다. 1937년 5월 신강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포병과 특수교육을 받고 교관으로 활동 중 1941년 3월 광복군으로 전적되어 동년 6월 후방소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2개월간 출동 아얼태산 토벌작전 끝에 후방을 평정시켜 성장으로부터 은질장장이 수여되었고 1943년 11월 보안사령부로부터 파견 근무 중 정보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적군 밀정을 검거 심문 이 지역 독산 자유전의 폭파를 사전 예방함으로 광복군의 활약을 중국 정부는 드높게 평가하였다. 광복 직후 서안 사곡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 귀대한 선생은 그해 12월에 노태준 대장의 지시를 받아 귀국 선발대의 인솔 책임자가 되어 익년 4월 모두를 무사히 서울에 도착시켰다. 1948년 33세때 대한민국 육군 사관학교 제7기 특별후보생으로 입교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압록강까지 진군하여 큰 공훈을 세웠고 12년간 육군으로 활약하다가 196
0년 중령으로 군 예편 후 상동중석광업공사 문화부장 등 공직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선생의 공적을 치하하여 화랑무공훈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하였다. 만년에는 광복회와 재향군인회를 오가면서 후진교육과 남북 통일을 염원하시다가 1999년 7월 22일 향년 84세로 대구시 달서구 송현2동에서 영면하시니 광복회는 동지장으로 이곳 대구 선열공원에 모셨다. 부인 진주 강수진 여사는 부덕이 있고 슬하에 1남 4녀를 두어 장남은 동경 자부는 이유자요 손자에 정수요 손녀에 효정이다. 장녀에 추경 차녀에 하경 3녀에 춘경 4녀에 재경이다.
서기 1999년 월 일 광복동지회장 고령 신성구 삼가짓고 광복회 대구 경북 연합지부는 세우다
愛國志士 金明天 先生之墓(애국지사 김명천 선생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