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 탐방로그
- 조기홍 묘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3묘역에 있으며, 묘역번호는 24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志士 趙氣虹 之墓(지사 조기홍의 묘)
조기홍(趙氣虹) 1883-1915 / 묘역번호 : 24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운동계열 : 국내 항일, 대구
.안장일시 : 1963년 10월 5일
1919년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동포들의 관공서 관리사직 권고 등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대한민보와 독립축하가 포고문 배포로 체포, 1년 옥고. 1920년 조선 독립촉진을 위해 폭탄제조. 비슬산에 은닉 중 발각 체포 제령 및 총포화약류 취체령으로 3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운동계열 : 국내 항일, 대구
.안장일시 : 1963년 10월 5일
1919년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동포들의 관공서 관리사직 권고 등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대한민보와 독립축하가 포고문 배포로 체포, 1년 옥고. 1920년 조선 독립촉진을 위해 폭탄제조. 비슬산에 은닉 중 발각 체포 제령 및 총포화약류 취체령으로 3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志士 咸安 趙公 之墓(지사 조기홍의 묘)
공의 휘는 기홍이요 함안인 휘 성달의 자로서 서기 1883년 7월 24일 함안군에서 출생하신 바 유시부터 탁월한 재기와 명철한 두뇌는 유명한 발명가들에 못지 않었으나 환경의 불운과 경제의 타격으로 청운의 뜻 이루지 못하고 가계를 돕기 위하여 금은세공업을 경영하든 중 서기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기를 들고 이러남에 따라 용감히 동지들과 모의하와 대한민보를 발간하는 한편 야음을 타서 인쇄물을 살포하고 독립정신 고취에 노력함을 계속하든 중 비밀이 왜경에 탐지되여 1921년 7월 9일 피체됨에 악독한 고문에 굴치 않고 벙어리 행세로 적 관헌의 눈을 속이고 서울로 압송되여 경성형무소에서 6개월 겪다가 출옥 후 다시 동지들과 규합하여 비밀 결사하고 왜적 시설의 파괴와 요인의 폭살을 목적으로 폭탄을 제조하여 은닉해 두고 기회를 노리든 중 밀양경찰서 파괴에 시용타가 애석하게도 재검거되여 대구형무소에서 3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출옥한 후도 끊임없이 광복운동에 헌신타가 해방을 10여일 앞두고 서기 1945년 8월 2일 기세하시니 향년이 62시었다.
서기 1964년 4월 일
사자 용원(성태), 손 익준 우진 우제
사자 용원(성태), 손 익준 우진 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