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 탐방로그
- 김석용 묘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3묘역에 있으며, 묘역번호는 20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조국의 주권 회복과 민족의 자유 독립을 위하여 적국 일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옥고를 치루신 독립투사 한 분이 여기 잠들어 계시니 이 분이 바로 강암 김석용 지사이시다. 시조 가락 수로왕 49세손인 김해 김학동 공과 경주 정우연 여사의 7남 2녀 중 7남으로 1924년 2월 16일 경남 충무시에서 출생하셨는데 소년 시절 모부인을 모시고 도일하여 경도고등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한국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수모와 학대를 받으므로써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분노는 항일투쟁과 민족자결 의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인 1941년 전경원 윤성택 김말도 이상
문 등 많은 동지들과 경도의 미도 신사 경내에서 밀회하여 항일투쟁과 독립운동 방법을 정하고 1942년 8월 징병제도를 이용하여 공군과 경찰에 들어가서 일본 중요 기관을 폭파하고 반전과 내란 공작의 작전 계획을 세웠으며 동년 10월 대판 철도국에 다니면서 항일단체인 철윤회에 참여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일본은 2차 세게대전에서 반드시 패전한다는 반전 의식을 고취하였던 바 이를 탐지한 왜경은 체포령을 내렸다. 고야광남이란 이름으로 신내천현(카나가와현) 지방으로 숨어다니다가 국내 실정을 살피기 위해 일시 귀국하여 동지들에게 일본의 동향과 항일투쟁 상황을 알리고 익년 3월 다시 도일하여 국내 현황을 전하였는데 이때 한국에서는 전시 식민지 정책으로 징병 징용 정신대 등 우리 민족은 인명과 재산을 수탈 당하여 굼주림의 참혹한 수난과 실상을 듣고 동지들은 항일투쟁에 헌신할 의지가 더욱 굳어젔다. 1943년 10월 시국 강연 차 대판 공회당에 오는 일본의 국무총리 동조영기(도조 히데키)를 암살할 게획을 세우고 동지들과 은밀히 폭탄을 입수하였던 바 왜관헌에게 발각되어 재기를 꾀하여 변신하였으나 익년 5월 14일 경도에 있는 친형 택에서 피검되어 1년여에 걸친 미결수로 동지들과 함께 옥고를 치루다가 해방 한 달 후인 1945년 9월 20일 다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로 출옥하였다. 광복 후 온갖 풍상을 겪으시면서 자제 교육과 통일 염원에 힘쓰다가 1990년 7월 24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1동에서 향년 67세로 영면하시니 광복회 동지장으로 이 곳 대구 선열묘지에 모셨으며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하고 이 비를 세웠다. 부인 진양 강현선 여사는 부덕이 있고 슬하에 5남을 두었는데 희종 희영 희웅 희현 희범이며 자부는 전태득 천도수 진은숙 박순애이다. 손자에 성철 윤준 성훈이 있고 손녀에 미란 혜은 정
란 윤경 예란이 있다.
1992년 8월 15일 고령 신성구 짓고 달성 서석준 쓰다
1992년 8월 15일 고령 신성구 짓고 달성 서석준 쓰다
愛國志士 剛庵 金碩用 之墓(애국지사 강암 김석용의 묘)
강암 김석용(金碩用) 1924-1990 / 묘역번호 : 20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운동계열 : 일본 방면, 경남 통영
.안장일시 : 1990년 7월 26일
1941년 일본 유학 중 민족차별에 반감 독립운동에 헌신 결의, 철도국 근무 중 항일조직 철륜회 입회 독립운동 방략논의, 1944년 일경에 체포, 고문, 옥고 중 광복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출옥함.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운동계열 : 일본 방면, 경남 통영
.안장일시 : 1990년 7월 26일
1941년 일본 유학 중 민족차별에 반감 독립운동에 헌신 결의, 철도국 근무 중 항일조직 철륜회 입회 독립운동 방략논의, 1944년 일경에 체포, 고문, 옥고 중 광복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출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