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112-2
- 탐방로그
- 이상정, 이상화, 이상백 삼형제의 묘가 같은 공간에 있으며, 삼형제의 큰아버지인 이일우의 송덕비도 묘소로 가는 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李庄家(이장가)
南齋(남재)
祭閣(제각)
이상백, 이상정, 이상화의 큰아버지인 이일우의 송덕비(李一雨 頌德碑)이며, 묘소로 가는 길에 있다.
月城李公 相佰 之墓(월성이공 상백 지묘)
상백 이상백 박사는 월성이공 시우 선생의 제3남으로 1903년 음 8월 5일 대구시에서 탄생하였다. 천자가 준수영오하여 일찌기 백부 소남 일우옹이 지사 양성을 목적으로 창설한 우현서루에서 수학하고 대구고보를 거쳐 일본의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중국에 가서 그 창축을 더욱 섬부하게 하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후진 훈도에 진췌하는 동시에 학술연구에 몰두하여 한국문화사 연구 논고 이조건국의 연구 등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여 우리 학계에 커다란 성좌를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1954년 학가원회원에 당선되고 1955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박사는 체육면에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여 일찌기 일본 체육계에서 활약할 당시 어려운 세태에도 불구하고 한국 체육인의 국제 무대 진출의 터전을 마련하기에 노력하였고 8.15 후 아직 미군정하에 있을때에도 대한올림픽위원회를 조직하여 국제올림픽에 참가하는 독립국가로서의 자격을 얻는데 성공하였으며 1948년에 아세아경기연맹의 회원국으로 정식 가맹 자신이 실행위원으로 피선되고 널리 세계적으로 아마츄어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바 있어 1964년 국제올림픽위원으로 추대되어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일층 높이었다. 박사는 한국사회 학회장 동아문화연구소장 및 대한올림픽위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의 위원 또는 회원으로 우리 문화계에 눈부신 활약을 하였으므로 1963년에 건국문화훈장을 수상하고 墺地利(오지리:오스트리아), 일본 등 외국 정부에서도 공로훈장을 수여하여 그 공적을 찬양하였다. 박사는 비록 1966년 4월 14일 64세란 아까운 나이로 타계하였으나 그 고매한 인격과 수많은 업적은 일월과 함께 길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