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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5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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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553-49 명성운수 정문 옆 50m 동쪽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안내판을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553-49 명성운수 정문옆 50m동쪽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안내판을 찾았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中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고양시 일산서구 원일로 101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당시 고양군 중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에 고양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활발히 얼어나자 중면 면장은 주민들에게 시위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는 한편 일산리 헌병주재소에 주민들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면장과 면서기를 응징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3월 25일 밤 주민 50여 명이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산 장날인 26일에는 500여 명이 밤에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한편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28일에도 150여 명의 주민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를 불렀다.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中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고양시 일산서구 원일로 101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당시 고양군 중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에 고양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활발히 얼어나자 중면 면장은 주민들에게 시위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는 한편 일산리 헌병주재소에 주민들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면장과 면서기를 응징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3월 25일 밤 주민 50여 명이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산 장날인 26일에는 500여 명이 밤에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한편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28일에도 150여 명의 주민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를 불렀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中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고양시 일산서구 원일로 101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당시 고양군 중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에 고양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활발히 얼어나자 중면 면장은 주민들에게 시위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는 한편 일산리 헌병주재소에 주민들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면장과 면서기를 응징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3월 25일 밤 주민 50여 명이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산 장날인 26일에는 500여 명이 밤에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한편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28일에도 150여 명의 주민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를 불렀다.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中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고양시 일산서구 원일로 101
중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당시 고양군 중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에 고양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활발히 얼어나자 중면 면장은 주민들에게 시위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는 한편 일산리 헌병주재소에 주민들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면장과 면서기를 응징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3월 25일 밤 주민 50여 명이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산 장날인 26일에는 500여 명이 밤에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한편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28일에도 150여 명의 주민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