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7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주 3.1운동 만세 시위지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광주독립운동 사적지 - 2 / 2018.12.
건너편에 구 적십자병원 표지석이 있다.
광주 3.1운동 만세 시위지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광주 3.1운동 만세 시위지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이곳 부동교 밑 광주천변은 작은 장날이던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학생, 일곡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시민 등 1천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기삼연 의병장 순국지
이곳 광주천변 모래사장은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된 기삼연 의병장이 설날이던 1908년 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로 호송된 후 재판없이 총살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