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술 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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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417-3
탐방로그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417-3에 위치한 오성술 선생 구 묘소를 찾았다. 선생의 묘소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215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해당 장소에는 봉분과 비석이 위치해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주 광산구 송산동 417-3 의병대장 오성술 舊 묘비를 찾아왔다. 네비게이터가 저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오성술 의병장의 묘소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215에 있다.
이전한 것 같아서 구 묘비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묘소가 보인다.
오성술 의병장 묘소 안내판
앞쪽에 있는 묘소. 학생 나주오공 휘 상의(원경)지묘.
義兵大將 羅州吳公 成述 之墓(의병대장 나주오공 성술 지묘)
의병대장 나주오공 성술은 서기 1884년 5월 15일 이곳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죽산에서 선고 오영선과 선비 나주임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공의 휘는 인수, 자는 성술, 호는 죽파요 아주오문 고려중량장 ?의 후손인 이조 세조 공신 나성군 자치의 15대손이다. 어릴적부터 무예에 뛰어나 궁술, 승마, 사격에 능했으며 7세에 입학 16세에는 당대 사림의 태두요 의리 엄중하셨던 족숙이신 후석 오선생 준선문하에서 경서를 익혔으며 후일 동문인 금재 이기손장군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다. 공은 천품이 호방하여 심장적구하는 유생들에게는 천보??함을 주창 우국의 논을 폈으며 청일전쟁후에 의기상합한 벗을 찾아 삼남을 주유하던중 1905년 10월 이른바 을사매국조약을 체결하였다는 비보를 익산땅 여사에서 듣고 와신상담이던차 다음해 4월 웇의절론한 거유 면암 최익현선생께서 창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전가산을 방매 거의하고 장성 기삼연 송사선생의 기의에 호응했다. 그러나 슬프다 국운의 애진함이여 선론사 신기선으로 하여
에 국군마져 해산하니 이에 팔도의 의혈지사 분연 봉기터라. 1907년 8월 이때 공은 호남의병대 기삼연장군을 총사로 김준장군과 함께 야전 선봉장이 되어 9월에 고창 문수산에서 일군과의 접전으로 이후 파란만장한 항일구국성전에서의 헤아릴수없는 대소 혈전을 엮어간것이다. 공은 1908년 정월 창평 무동대전투 왜장 요시다(길전)을 통쾌하게 사살한 기운을 발상하는등 손오의 지를 다한 지장이시며 그후 어등산전투에서는 혈맹의 전우 김준장군이 순절하자 조경환장군과 함께 용진산에서 진세를 파면하던중 전북 진안에서 해산 전기홍장군이 래도 도림에서는 회천을 맹서하고 공이 장사됨을 추재받자 년소로 이를 사양 총참모장 자원하여 의여의 기강을 바로잡고 도처의 혈전에서 수공을 세운 덕장이기도 하다. 전해산을 비롯하여 심남일, 이대국, 안규홍, 김여회, 유춘신 그리고 강무경, 박영근등 제장은 모두 공과는 혈매의 전우요 도림과 용진산은 당시 후석선생께서 은거하시며 학문을 강론하고 특히 배일 독립정신을 고취 수 많은 거유와 의병열사를 배출시킨곳이다. 이로부터 1년여 광나, 장창, 함평등지에서 일컫는바 오성술 혹은 오참봉부대로 종횡무진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니 그 신출귀몰한 대소전은 전설인양 우금 촌로로 구전되니 어찌 이를 필설로 다하며 독립운동사, 의병항쟁자료집이나 일경 전남폭도사 그리고 공소원 판결문 기타등에서 공의 피어린 전력을 편편히 살필수는 있으나 이 또한 어찌다 수록되었다하랴. 1909년 8월에 이르러서는 세궁력진 불과 30여명의 진세로 각지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비통하게도 일제 밀정의 고발로 나주 용문산에서 왜군에게 포위체포되어 갖은 악혀에도 불구하고 추상열일의 기개로 놈들을 규탄매진하면서 마침내 익년 9월 15일에는 북향사배 만세를 부르고 형장에서 순절하시니 오호라 국의 한이여 애달픔이여 때는 향년 겨우 27세요 그후 전북땅 ?신묘 영광사에 배향 함이 되었으며 묘소는 이곳 죽산촌 후임좌이다. 부인 금성 나씨는 임난공신 나대용장군의 후예로 1남을 낳았고 덕향고절이 향관을 떠러 효열부로서 후일 나주 삼강록에 올랐으며 묘소는 공의 부좌이시다. 아들에는 근만, 그 손에 용구 그리고 증손에 상교,
석교, 인균이 있다. 1977년 정부는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으나 공의 높으신 충절을 경모함이 어찌 이로써 족할지며 용주군의 정성에 문중 모두 협찬하여 광복사에 찬연한 공의 공훈을 수비로 만대에 전하고자 고증을 들어 비문을 간청하나 나의 문졸함이 공의 천추에 빛날 거룩하신 자취의 일단이나마 어찌 또한 그리수 있으리요. 고사하다못하여 삼가 이에 그줄거리만 적노비 의혈은 영항히 민족의 기개되여 양단된 쓰라림은 통일로 번영하고 겨레여 강산이여 만세무궁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