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476-1
- 탐방로그
- 벽산 김도현 선생 관련 유적지로는 이 곳 영양군 입암면 연당교 옆에 있는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와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바닷가에 있는 도해단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명왈 충효는 한 뿌리니 효우에 호국이라. 사농의 포의지사 서창으로 싸웠으니 공들의 순국지절, 고장 깊이 심었도다. 조각돌에 새긴 글귀 충효 영세 거울이라.
서기 1990년 경오 10월 일
평산 신헌기 근찬
동래 정휘한 근서
서기 1990년 경오 10월 일
평산 신헌기 근찬
동래 정휘한 근서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
관리번호 : 31-1-52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자 : 영양군, 사부령순국지사 유족회
이 기념비는 1896년 6월 22일(음력 5월 12일) 일본군이 사부령을 넘어 영양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태모(성첨)공을 필두로 주민 30여명이 농기구를 들고 맞서 싸웠으나 적의 총탄에 맞아 12명이 장렬히 순국한 우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유도회 영양군 지부가 군비와 주민 성금으로 세웠으며 2003년 12월 9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지정받은 현충시설이다.
2007년 11월 일 안동보훈지청장
관리번호 : 31-1-52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자 : 영양군, 사부령순국지사 유족회
이 기념비는 1896년 6월 22일(음력 5월 12일) 일본군이 사부령을 넘어 영양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태모(성첨)공을 필두로 주민 30여명이 농기구를 들고 맞서 싸웠으나 적의 총탄에 맞아 12명이 장렬히 순국한 우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유도회 영양군 지부가 군비와 주민 성금으로 세웠으며 2003년 12월 9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지정받은 현충시설이다.
2007년 11월 일 안동보훈지청장
사부령순국지사 명단
정태모(성첨):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상조, 김상진, 김경제, 안경순, 김계현, 김순흠, 김장흠, 김용흠, 심의형, 박석래, 남조한
기념비 건립 당시 추진위원
고문 : 이우호 이용해 오경목 조형석 김응환 박찬경 오원익 정휘표, 위원장 : 정휘준, 부위원장 : 김두식 권태혁, 위원 : 배선덕 오정철 신상도 김태조 정주암 오창현 안규황 남영락 정재홍 김근준 금병익 김호봉 이인섭, 유족대표: 김시환(총무) 안상오 정동진
정태모(성첨):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상조, 김상진, 김경제, 안경순, 김계현, 김순흠, 김장흠, 김용흠, 심의형, 박석래, 남조한
기념비 건립 당시 추진위원
고문 : 이우호 이용해 오경목 조형석 김응환 박찬경 오원익 정휘표, 위원장 : 정휘준, 부위원장 : 김두식 권태혁, 위원 : 배선덕 오정철 신상도 김태조 정주암 오창현 안규황 남영락 정재홍 김근준 금병익 김호봉 이인섭, 유족대표: 김시환(총무) 안상오 정동진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497 연당교 앞 정성첨 의병순국지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를 찾아가고 있다.
벽산 김도현 선생 관련 유적지로는 이 곳 영양군 입암면 연당교 옆에 있는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와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바닷가에 있는 도해단이 있다.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476-1(임천교앞)의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를 찾아왔다.
사부령 순국지사 합동기념비
가빈에 효자나고 국난에 충신이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충효가 천성지출의 일본(一本)임을 일깨운 말이라 하겠다. 이 나라는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왕권회복의 정치체제는 잡았으나 민생은 가난에 허덕이고 쇄국정책은 신문화의 기운에 뒤졌으니 세계열강의 정경각축은 우리 한반도에서 부딛치고 말았다. 더군다나 청일, 러일 양역에서 승세를 몰고온 일본은 마침내야 1896년에는 민비 시해의 악랄한 만행을 저질렀고 수호조약이란 미명 아래 국권마저 빼았고 말았다.
아! 상고컨대 국운의 경배에 근역전토를 침탈유린한 왜적병은 이 고장 영양땅마저도 강점유린함에
아! 상고컨대 국운의 경배에 근역전토를 침탈유린한 왜적병은 이 고장 영양땅마저도 강점유린함에
이심전심 토적의 울분은 치솟고 드높았었다. 이에 수적인 왜병을 연당리 사부령에서 맞아 민병 삼십수명이 일진되어 최후의 일각까지 항쟁 격전타가 적의 신예 총탄 앞에 중과부적으로 호국의 붉은 피를 이 땅에 뿌리시고 세전 전답의 흙을 움켜 씹으며 장렬히 순절하신 분들이 있었으니 바로 김상조, 정태모, 김상진, 김영제, 안경순, 김계현, 김순흠, 김장흠, 김용흠, 심의형, 박석래, 남조한 열두분의 지사시고 때는 거금 1세기 전인 1896년(병신) 음 5월 12일. 민족의 정기가 충천한 영양 사부령의 항일 대회전이다. 슲으다. 전투를 이제 그 전투원의 다과에서 그 비중을 평가하며 출사 장졸의 품작존비로만 의의를 부여하리... 이 사부령전투는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여 선비는 붓을 던지고 창을 들었으며 농부는 괭이와 삽을 들고 부전하였으니 사농포의의 분연의거요 일구의 격문도 없이 분집항전하여 일당백의 섬적 끝에 순국하셨으니 공들의 충절이야말로 일월의 쟁광이요 의리는 송죽에 영롱하며 연당난류는 장충호곡으로 흘렸나니 이는 천추의 거울이요 영세수범의 충정이 아니랴. 이제 공들이 순국하신 지 벌써 1세기를 헤아리나 성미합으로 지우금 선양 기념하는 일편석의 수립도 이룩치 못하던 중 만시지탄이 있으나마 영양군비의 협찬과 순국지사 사부령 합동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공들의 지절을 드밝히고저 한 조각의 돌을 세우나니 뒷 사람들은 우러러 감탄할 뿐만 아니라 의를 깨우시게 하고 충과 효를 본받게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