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현 거처(송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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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 294-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김 구현(龜顯)公 居處
(1889.11.28~1969.10.21.)
안동김씨 등암공파 죽소공문중
애국지사 김 구현(龜顯)公 居處 (1889.11.28~1969.10.21.) 안동김씨 등암공파 죽소공문중
경북 안동군 서후면 교동 392번지에서 출생, 본적지 소재 송포정사(松圃精舍)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10여 년간 한학교사로 종사하면서 평소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조국독립과 발전을 위해 적극 참여하였다.
1924년 갑자(甲子)에 독립을 목표로 독립운동자금 15원을 흔쾌히 지불하고, 독립운동특별자금 모집과 조직 확대를 위해 적극 활동해 오던 중, 동료 26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출소 후에는 본적지에서 농민들을 상대로 한학을 교육하면서 농촌계몽 활동에 이바지하는 등,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신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철주야 활동하여 조국독립에 기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서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松圃精舍(송포정사) 안내
松圃精舍記(송포정사기)
松圃精舍(송포정사) 안내.
松圃精舍記(송포정사기). 물과 뭍의 초목들 중 사랑할만한 것들이 많지만 숲처럼 많은데 그치지 않는다. 혹독한 겨울을 지난후에 모든 초목이 시들었을 때 굳샌 자태를 지키고 눈과 서리와의 써움에는 익숙하나 재주가 없어 청황(靑黃)의 재앙을 피하는 것은 오직 소나무뿐이다.
김군주사(金君主事) 우한(佑漢)은 한석골 동쪽 만송(萬松) 깊은 곳에 나아가 살면서 완전하게 아름다운 정사를 지었으니 자신의 자손들을 위하여 학업을 익히는 장소로 삼은 것이다. 형동, 장욱, 구현 세형제도 이미 장성하여 학문에 나아가 바르고 삼가서 스스로 경계함이 있으니 그 지내온 내력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한옹은 조상이 남긴 계책으로 넉넉한 후손을 일으킬 창립의 공이 있는 것이다. 만일 김군이 세상에 나아가 쓰인다면 매우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단이 있으니 산림경제의 지식에만 그칠 뿐만이 아니라 은거하여 함양하는 후덕함에까지 이르면 흉년에 솜옷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은 삼공의 녹을 받는 자들에게 향보하지 않고 선비친구들이 와서 머물면 더불어 인정스럽게 의(義)를 중시하고 돈을 가벼이 여겨 이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다. 농사지으면서 늘그막의 계획이 활발히 발전하는 모습이 있으니 김군은 가히 덕을 심어서 그 먹을거리의 보답이 있을 것이다.
정사(精舍)가 있음에 정사의 이름이 없을 수 없으니 그 이름이 송포(松圃)가 어떠한가? 송포의 뜻은 무엇인가?
이전에 늦도록 푸르른 것은 추위에도 싱싱함을 받아 들여 추위가 오래 되어도 오히려 얼어서도 푸르름이 성대하여 그 색깔을 변치 않는 것은 반드시 봄여름에 그 푸르름을 빨리 성장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松圃精舍(송포정사)
松圃精舍(송포정사)
안동시 서후면 교리 294-2 애국지사 송강 김구현(金龜顯)선생의 거처 송포정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