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수예리 5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순국선열 학암 박선생 기적비문
나라가 평화로울 때나 어지러울 때 한결같이 생각나는 사람은 나라 위해 몸 바친 선열이니 학암 박윤중 의사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의사의 휘는 이중 초휘는 윤중 자는 윤일 호는 학암 본관은 밀양 신라왕자 언침 중조이고 고려 공민왕 때의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도학군자인 문경 정제공은 17대조이며 아버지는 선비 광문이요. 어머니는 경주이씨 주수의 따님이시다. 의사께서는 조선 고종 때 병자년(1876) 10월 27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수둔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특출하고 온후한 성품으로 한학을 배워 해박한 학식과 충효의 중요함을 깨우치셨다.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도지부에 출임하셨다. 이어 친위영 시위대의 군인이 되어 충의로써 보국하고 존망의 위기에 있는 한말의 사직을 지키려고 다짐하셨다. 의용이 비범한 의사는 거듭 진급하여 참교가 되시어 노심초사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심혈을 바치셨다.
나라가 평화로울 때나 어지러울 때 한결같이 생각나는 사람은 나라 위해 몸 바친 선열이니 학암 박윤중 의사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의사의 휘는 이중 초휘는 윤중 자는 윤일 호는 학암 본관은 밀양 신라왕자 언침 중조이고 고려 공민왕 때의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도학군자인 문경 정제공은 17대조이며 아버지는 선비 광문이요. 어머니는 경주이씨 주수의 따님이시다. 의사께서는 조선 고종 때 병자년(1876) 10월 27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수둔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특출하고 온후한 성품으로 한학을 배워 해박한 학식과 충효의 중요함을 깨우치셨다.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도지부에 출임하셨다. 이어 친위영 시위대의 군인이 되어 충의로써 보국하고 존망의 위기에 있는 한말의 사직을 지키려고 다짐하셨다. 의용이 비범한 의사는 거듭 진급하여 참교가 되시어 노심초사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심혈을 바치셨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군문의 일선에 있던 의사는 이에 반대하고 의분과 비통 속에 국권회복의 길을 모색하셨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앞서 민족보위의 중추인 군대를 해산하게 되자 대장 박승환은 통분을 참지 못하여 자폭하니 각 영의 위졸이 뒤를 따랐다. 의사는 시위대 병영에서 일군과 교전하니 나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선두에 나서서 싸웠으나 애잔한 국력과 중과부적으로 시위대 군인들과 함께 그해 정미(양) 8월 1일 장렬히 최후를 마치셨다. 향년 32세 짧은 생애였으나 충효의 화신으로 구국의 영령으로 이 땅에 사셨다. 그 뒤에 칙령으로 장충단에 선무랑 병절교위로 기명이 되고 천운이 도래하여 나라가 광복이 된 뒤 1980년 독립유공으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나 1991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의사의 항일 순국은 숭고한 애족 애국정신의 발로요 민족자주정신의 천명으로 길이 추앙되고 빛날 것이다. 이에 의사의 송백같은 충절을 이 빗돌에 새기나니
순국선열 학암 박선생 약력
공의 휘는 이중이요 초휘는 윤중. 자는 윤일이며 호는 학암이다.
밀양인으로 공민왕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경공 정재 박의중공의 17세손인 광문의 아들이다.
공의 휘는 이중이요 초휘는 윤중. 자는 윤일이며 호는 학암이다.
밀양인으로 공민왕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경공 정재 박의중공의 17세손인 광문의 아들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수예리 55 순국선열 학암 박윤중 선생 기적비를 찾아왔다.
鶴巖 朴潤重 先生 紀跡碑(학암 박윤중 선생 기적비)
이 기적비는 학암 박윤중(1876~1907)선생께서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항쟁하다 순국하신 뜻을 기려 2010년에 건립되었다.
1907년 대한제국군 시위대(侍衛隊) 참교(參校)로 복무하던 선생은 그해 8월 1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이에 대항하여 일본군과 접전,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사 후 칙령에 의하여 장충단에 기명이 하사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덕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2011년 10월 일 국가보훈처
이 기적비는 학암 박윤중(1876~1907)선생께서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항쟁하다 순국하신 뜻을 기려 2010년에 건립되었다.
1907년 대한제국군 시위대(侍衛隊) 참교(參校)로 복무하던 선생은 그해 8월 1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이에 대항하여 일본군과 접전,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사 후 칙령에 의하여 장충단에 기명이 하사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덕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2011년 10월 일 국가보훈처
학암 박윤중선생 기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