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균 순국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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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146-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빛나고 거룩한 업적을 기렸도다. 선생이 가신지 마흔일곱돐 조국은 민족중흥의 고동속에 약진하고 있도다. 우리는 선열의 넋을 받들어 통일대업을 하루속히 이루어야겠도다.
여기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가계의 성원을 얻어 순국기념비를 세워 선생을 추모하노니 명명중의 영령은 아나리 이겨레의 앞날을 굽어 지켜주시리로다.

대통령 박정희 題字
이곳 자산공원은 매우 넓다. 무공수훈자 공적비가 있는 산, 충혼탑이 있는 산, 그리고 그 앞쪽에 있는 저산이다.
GPS 상의 주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100-5 이다.
대한의사 일괴 이명균 선생 순국 기념비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로 잃은 국권을 회복코저 순국선열이 뿌린 푸른 피와 독립군이 흘린 붉은 피는 이나라 이겨레의 영원히 받들 숭고한 얼이요 넋이요 또한 경경한 민족정기의 원천이로다. 3.1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사를 가늠하는 거족적이요 거국적인 장거로 세계만방에 한민족의 굳센 기개와 불굴의 의기를 드날린 항일운동이었도다. 전민족의 대독립운도이 일제의 총검에 의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우리의 선각들은 조국광복의 장구한 계획을 짜서 해내외에 호한 독립쟁취의 터전을 닦았도다.온 겨레의 여망과 온 세계의 주시속에 수립을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륙의 일우인 상해에서 항일투쟁을 통할하게되어 일제의 문화적 침식에 시들어가고 경제적 침탈에 신음하는 동포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고 자주의 의기를 부어넣어주었도다. 이에 임시정부와 대한군정서를 지원하여 독립전생에 의한 광복을
전취코저 1920년 3월에 김천에서 결사한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은 교남일원에서 활동을 전개하여 일제에게 공포를 주고 동포에게 용기를 주어 한국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도다. 일괴 이명균선생은 실로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의 단장겸 재무총장의 수임을 맡아 활약하시다가 거부의 재산을 국권회복의 군자금으로 봉납하고 존귀한 신명을 조국광복의 제단에 희생하셨으니 그 절의의 장함을 어찌 붓으로 다 나타내리오. 선생의 관향은 연안으로 조선 성종조에 청백리로 이름난 좌리공신 연원군 충간공 휘 숭원을 14대조로 하여 1863년 1월 14일에 경상북도 금릉군 구성면 하원리에서 호상거사 휘 연성의 영윤으로 탄생하여 비범한 재모에 견확한 지조는 사우의 촉망을 받으셨도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박탈당함을 본 선생은 침략 원흉의 암살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분통한 나날을 보내다가 3.1만세의 함성이 온누리를 진덩히자 교남일월을 편력하여 시위운동을 선도하셨고 또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에 가담 활동하다가 옥고를 겪으셨도다.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의 활동상이 일제에게 탐지되어 검거된 30여 단원들과 모질고도 악독한 예심을 받던 선생은 늠연히 일헌을 꾸짖으며 불소불굴 끝까지 항쟁하셨으나 육순노구로서 어찌 그 악형을 이겨내리오. 1923년 5월 2일 천추의 함을 품은채 순국하셨도다. 일사구국! 선생의 거룩한 자취는 길이 호국의 귀감으로 받들어질것이며 음수사원! 광복된 조국에 삶을 누리는 거레 뉘아니 그 넋을 우러러 사모함이 없으리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3.1절을 기하여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여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