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134
- 탐방로그
- 김천시 부곡동 134에 위치한 송준필 선생 사당인 원계서원을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숭덕사 현판이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뒷편에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정희대통령이 쓴 숭덕사 현판이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뒷편에 있었다.
김천시 부곡동 134 원동 음지마을 공산 송준필 선생 사당 원계서원을 찾았다.
遠溪書院(원계서원) 入口(입구)
遠溪書院(원계서원)
원계서원(遠溪書院). 이 서원은 거유이며 독립운동가인 공산 송준필선생(1869~1043)이 강학하던 곳이다. 선생은 1919년 파리장서사건과 유림단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옥고를 피른 후 향리인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1933년 이곳으로 이거하여 저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 여기서 서거하였다. 이 건물은 선생 사후 유림들의 발의로 1968년에 건립되었으며, 뒷편의 숭덕사에는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송덕사 현판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1990년 국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계서원(遠溪書院). 이 서원은 거유이며 독립운동가인 공산 송준필선생(1869~1043)이 강학하던 곳이다. 선생은 1919년 파리장서사건과 유림단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옥고를 피른 후 향리인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1933년 이곳으로 이거하여 저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 여기서 서거하였다. 이 건물은 선생 사후 유림들의 발의로 1968년에 건립되었으며, 뒷편의 숭덕사에는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송덕사 현판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1990년 국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직방문
通告國內文
嗚乎死生天也 國復則死猶生也 國未復則生亦死也 此日何日漢師以下外至名.....
통고국내문(국내에 통고하는 글)
아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나라가 회복되면 죽어도 오히려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못하면 살아도 또한 죽은 것이다. 이 날이 무슨 날인가 서울을 비롯하여 밖으로 이름 있는 도시와 큰 항구 및 깊은 산골 외진 마을에 이르기까지 혈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환호하고 춤추며 한 마음으로 함께 외치지 않는 자가 없으니 하늘의 뜻이 화를 내린 것을 뉘우치고 사람들의 마음이 단결되었음을 이미 알 수 있도다
아 우리가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물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소리 없이 통곡한 지가 지금 십년이 되었도다 이제 천 년에 한 번 있는 기회를 만나 만방의 여론이 스스로 공평하여 나라를 회복할 가망이 있는데도 우리가 어떤 사람이기에 문을 닫고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글을 띄워 우러러 고하노니 이것은 실로 온 나라가 같은 심정일 것이며 여러 군자들의 생각 또한 마음속에서 빛날 것이다.
원컨대 지금부터 군에서 향으로 향에서 동에 이르기까지 각각 독립의 깃발을 세워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뜻을 밝히자. 그리고 다시 만국 회의에 글을 보내어 우리의 실정과 소원을 알게 함으로써 공평한 여론이 널리 펼쳐지게 한다면 천만다행이리라.
嗚乎死生天也 國復則死猶生也 國未復則生亦死也 此日何日漢師以下外至名.....
통고국내문(국내에 통고하는 글)
아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나라가 회복되면 죽어도 오히려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못하면 살아도 또한 죽은 것이다. 이 날이 무슨 날인가 서울을 비롯하여 밖으로 이름 있는 도시와 큰 항구 및 깊은 산골 외진 마을에 이르기까지 혈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환호하고 춤추며 한 마음으로 함께 외치지 않는 자가 없으니 하늘의 뜻이 화를 내린 것을 뉘우치고 사람들의 마음이 단결되었음을 이미 알 수 있도다
아 우리가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물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소리 없이 통곡한 지가 지금 십년이 되었도다 이제 천 년에 한 번 있는 기회를 만나 만방의 여론이 스스로 공평하여 나라를 회복할 가망이 있는데도 우리가 어떤 사람이기에 문을 닫고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글을 띄워 우러러 고하노니 이것은 실로 온 나라가 같은 심정일 것이며 여러 군자들의 생각 또한 마음속에서 빛날 것이다.
원컨대 지금부터 군에서 향으로 향에서 동에 이르기까지 각각 독립의 깃발을 세워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뜻을 밝히자. 그리고 다시 만국 회의에 글을 보내어 우리의 실정과 소원을 알게 함으로써 공평한 여론이 널리 펼쳐지게 한다면 천만다행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