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505-3
- 탐방로그
- 죽장사에 깊은 인연이 있는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의 총 지휘가 한문출 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 선생의 역사를 기념하고자 피신지, 은거지 표석을 세웠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오층석탑 바로 옆에 한문출 장군, 한중석 선생 은거지 표지석이 서 있었다.
抗日鬪士 韓仲錫 先生 隱居址
항일투사 한중석 선생 은거지
죽장사 주지 범일 한명수, 상욱, 상석, 대희, 지희 외 8명 세움
愛國女家(애국여가)
嶺南 ; 東學 昌義 乙未義兵 善山大將 韓文出 將軍 避身址
영남 ; 동학 창의 을미의병 선산대장 한문출 장군 피신지
항일투사 한중석 선생 은거지
죽장사 주지 범일 한명수, 상욱, 상석, 대희, 지희 외 8명 세움
愛國女家(애국여가)
嶺南 ; 東學 昌義 乙未義兵 善山大將 韓文出 將軍 避身址
영남 ; 동학 창의 을미의병 선산대장 한문출 장군 피신지
죽장사의 잊혀진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역사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 당시 침탈 야옥에 날뛰던 야만적인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조선을 침략하였다. 1894년(고종 31년) 음력 11월 초, 선산읍성을 점령한 왜군을 격퇴하고자, 선산갑오동학농민군 총지휘자 한문출 장군은 격렬하게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현대식 강력한 신무기에 밀려 이곳 죽장사에 피신하였다. 이런 연유로 천년고찰 죽장사는 일제강점기 온갖 탄압을 받아 절간 문을 닫아야할 지경의 위기를 겪었다. 일제가 망할 무렵인 1943년 항일독립투사 한중석 선생은 일본경도경찰서 고등계에 연행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끝내 불굴의 저항을 하여 거의 폐인이 되었고, 이곳 죽장사에 은거 요양생활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죽장사에 깊이 인연된 선산갑오농민전쟁의 총지휘자 한문출 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 선생의 역사를 기념하고자 여기에 조그마한 피신지, 은거지 표석을 세운다.
2015년 8월 15일, 동학학회 회장 김학광 근찬,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회장 한명수 건립.
1. 〈조선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 선산읍성전투에 부쳐〉 김용략 시인
반외세, 보국안민을 외치든 / 보름 전 있었던 우금치 전투의 처참한 패배를 / 여기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 이 땅의 오랜 주인 / 민중의 아버지와 아들들 / 선산, 무을, 옥성, 낙동,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의 / 갑오농민군 5백을 규합해 / 우두머리는 선산출신 한문출로 일본 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 선산읍성 점령에 나섰다. / ...(중략)
2. 〈경상도 선산군 갑오농민전쟁기념시〉
그 어둠을 등에 지고 흰 두루미같은 한 떼의 흰옷 입은 무리들이 / 이제는 일본 침략군의 병참기지가 된 / 최부자네 고택을 향해 횃불을 높이 들고 돌진한다. / 경상도 동학농민군 우두머리는 선산 출신 한문출 한정교 부자 농민군이다. / 일찍이 무관의 집안에서 뼈가 굵힌 / 애족과 애민의 사람들 /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외치는 / 이들의 목소리에 얼어붙은 낙동강물이 화답하듯 / 쨍쨍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 멀리 호남 땅에서는 동학농민군이 대패했다는 / 쓰디쓴 풍문이 들려오고 있다. / ...(중략)
3. P147...(중략) 바로 이놈들이 공주, 삼례취회를 다녀온 근동의 동학우두머리들. P148 "선산 한교리, 성주 여성도, 상주 김현영, 예천 최맹순, 김산 편보언, 황간 조재벽, 영동 손해창, 청산 김성원, 옥천 박석규, 보은 김연국 등"...(중략). P264 선산에서는 한교리가 한정교 박성빈(박정희대통령아버지) 정인백(구미상모동)을 내세워 선산 옥성 낙동 상주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 등지의 동학농민군을 규합하여 일본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선산읍성을 함락했다. ...(중략) 채길순(2014). 웃방데기(갑오년 이야기)
4. P460-P463 대통령 박정희의 아버지이고, 대통령 박근혜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몰락양반 출시으로 한다니 동학농민전쟁에 가담도 했다. 박성빈은 ...(중략) 위의환(2013.12.20.)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5. 갑오동지날 말시에 한문출 허화만남 을미 입동날 신시에 한문출 회동 조선에서 대청입국 은신함(송정 완흥군 이준용 기 1978년 삼암 표영삼 독)
6. 깡아리(애국지사 한유롱 생애에 부쳐) 어영택 시인
우리가 장하더라 / 너네들 보다 가야 / 그 마음 하나로 / 먼짓길을 걸었것다. / 왕검의 자손 그 자존 사랑하며 / 자갈길을 걸었것다. / 뚝심만 믿고 누가 이기나 보자 / 총칼 틈서리 흙탕길을 걸었것다. / 일마다 놈들의 일이라면 비탈길 갈며 / 깐깐한 깡아리가 불령선인 꼬리 달고도 / 짚신 신고 가시밭길을 걸었것다. / 역사가 1945년 8월 15일 새긴 날 / 비로소 임이 한숨을 쉬었것다. /
7. 한문출 장군 구 피신감 죽장사 무수잡초 오층석탑 생(한문출 장군께서 옛적에 피신한 죽장사를 보니 무수한 잡초가 오층석탑을 두러 나있네.) 광복 제2주년 맹하 연하 김구 (해주청년 김창수, 김산 달이실 피신인)
설계: 대구카톨릭대학교 환경조각전공 이상일 교수 시공: 구암석재 현장감독: 일법심 황금순, 찬불가수 김차경
주관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영남동학농민혁명.전쟁유족회.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 당시 침탈 야옥에 날뛰던 야만적인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조선을 침략하였다. 1894년(고종 31년) 음력 11월 초, 선산읍성을 점령한 왜군을 격퇴하고자, 선산갑오동학농민군 총지휘자 한문출 장군은 격렬하게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현대식 강력한 신무기에 밀려 이곳 죽장사에 피신하였다. 이런 연유로 천년고찰 죽장사는 일제강점기 온갖 탄압을 받아 절간 문을 닫아야할 지경의 위기를 겪었다. 일제가 망할 무렵인 1943년 항일독립투사 한중석 선생은 일본경도경찰서 고등계에 연행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끝내 불굴의 저항을 하여 거의 폐인이 되었고, 이곳 죽장사에 은거 요양생활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죽장사에 깊이 인연된 선산갑오농민전쟁의 총지휘자 한문출 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 선생의 역사를 기념하고자 여기에 조그마한 피신지, 은거지 표석을 세운다.
2015년 8월 15일, 동학학회 회장 김학광 근찬,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회장 한명수 건립.
1. 〈조선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 선산읍성전투에 부쳐〉 김용략 시인
반외세, 보국안민을 외치든 / 보름 전 있었던 우금치 전투의 처참한 패배를 / 여기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 이 땅의 오랜 주인 / 민중의 아버지와 아들들 / 선산, 무을, 옥성, 낙동,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의 / 갑오농민군 5백을 규합해 / 우두머리는 선산출신 한문출로 일본 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 선산읍성 점령에 나섰다. / ...(중략)
2. 〈경상도 선산군 갑오농민전쟁기념시〉
그 어둠을 등에 지고 흰 두루미같은 한 떼의 흰옷 입은 무리들이 / 이제는 일본 침략군의 병참기지가 된 / 최부자네 고택을 향해 횃불을 높이 들고 돌진한다. / 경상도 동학농민군 우두머리는 선산 출신 한문출 한정교 부자 농민군이다. / 일찍이 무관의 집안에서 뼈가 굵힌 / 애족과 애민의 사람들 /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외치는 / 이들의 목소리에 얼어붙은 낙동강물이 화답하듯 / 쨍쨍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 멀리 호남 땅에서는 동학농민군이 대패했다는 / 쓰디쓴 풍문이 들려오고 있다. / ...(중략)
3. P147...(중략) 바로 이놈들이 공주, 삼례취회를 다녀온 근동의 동학우두머리들. P148 "선산 한교리, 성주 여성도, 상주 김현영, 예천 최맹순, 김산 편보언, 황간 조재벽, 영동 손해창, 청산 김성원, 옥천 박석규, 보은 김연국 등"...(중략). P264 선산에서는 한교리가 한정교 박성빈(박정희대통령아버지) 정인백(구미상모동)을 내세워 선산 옥성 낙동 상주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 등지의 동학농민군을 규합하여 일본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선산읍성을 함락했다. ...(중략) 채길순(2014). 웃방데기(갑오년 이야기)
4. P460-P463 대통령 박정희의 아버지이고, 대통령 박근혜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몰락양반 출시으로 한다니 동학농민전쟁에 가담도 했다. 박성빈은 ...(중략) 위의환(2013.12.20.)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5. 갑오동지날 말시에 한문출 허화만남 을미 입동날 신시에 한문출 회동 조선에서 대청입국 은신함(송정 완흥군 이준용 기 1978년 삼암 표영삼 독)
6. 깡아리(애국지사 한유롱 생애에 부쳐) 어영택 시인
우리가 장하더라 / 너네들 보다 가야 / 그 마음 하나로 / 먼짓길을 걸었것다. / 왕검의 자손 그 자존 사랑하며 / 자갈길을 걸었것다. / 뚝심만 믿고 누가 이기나 보자 / 총칼 틈서리 흙탕길을 걸었것다. / 일마다 놈들의 일이라면 비탈길 갈며 / 깐깐한 깡아리가 불령선인 꼬리 달고도 / 짚신 신고 가시밭길을 걸었것다. / 역사가 1945년 8월 15일 새긴 날 / 비로소 임이 한숨을 쉬었것다. /
7. 한문출 장군 구 피신감 죽장사 무수잡초 오층석탑 생(한문출 장군께서 옛적에 피신한 죽장사를 보니 무수한 잡초가 오층석탑을 두러 나있네.) 광복 제2주년 맹하 연하 김구 (해주청년 김창수, 김산 달이실 피신인)
설계: 대구카톨릭대학교 환경조각전공 이상일 교수 시공: 구암석재 현장감독: 일법심 황금순, 찬불가수 김차경
주관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영남동학농민혁명.전쟁유족회.
갑오년 7월 칠석 대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