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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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608
탐방로그
2015년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이 운동을 기념하고자 건립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장으로 이봉조 총무장 박경순 재무 박봉열 이규신이 선임되었다. 이후 수차에 걸쳐 대구와 공함을 주고받았으며 4월20일에는 서울의 국채보상연합회의 소장 이준의 공함을 받았다. 고령단연회에서는 임원의 임명과 동시에 각 면동에 금주단연취지서와 회칙을 보내어 의연금 모금을 독려하였다. 다산면 총무 이택로와 재무 서성순의 보고서에 의하면 흉년으로 의연금 모금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연금납부명단을 살펴보면 이중엽 이봉조 이규신 김덕준 기장건 김희국 김성제 박장하 이영일 정재인 등과 여성으로는 박부인 두부인 이부인 김부인도 참여하였고 군민 다수가 동참하였다. 특히 읍헌동 정부인은 으가락지를 쾌척하였으며 개포동 학도와 동암동 나무꾼도 동참하였다. 일년간 활발히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방해로 의연금 처리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자 1908년 1월 11일 고령 향약회의 박을원 김봉희 박경순 등이 중심이 되어 25개 면 대표 46명이 완의문을 작성하여 본군의 의연금을 향중에서 관리하기로 결의하였다. 1909년 8월 14일에는 사립 우신학교 교장 이봉조 등이 의무금을 학교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자 반환을 요청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국채보상운동의연금이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령군 국채보상운동은 2013년 홍와고택에서 발굴된 자료를 통해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전개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국권수호운동이었고 발전된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은 오늘날 나눔과 책임의 시대정신과도 연결된다. 그리하여 민족의 정체서을 확립하고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15년 12월 일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건립
경북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608 고령향교 내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를 찾아왔다.
고령향교는 연조공원 바로 옆에 있었다.
경북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608 고령향교 내 고령군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건립되었다고 해서 찾아왔다.

고령군 국채보장운동 기념비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등에 의하여 발의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침탈할 목적으로 획책한 국채1300만원을 갚아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구단연회에서는 3월 8일 고령향교에 공함을 보내어 단체결성을 요청하였다. 고령향교에서는 향약회를 중심으로 3월 9일 홍와 이두훈 선생에게 고령단연회 회장을 맡아 줄 것을 용청하였다. 이두훈 회장은 환주 이진상 선생의 문인으로 주문팔현의 한분이다. 이때 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