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이전리 458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건립추진위원회
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건립추진위원회
고문
정용규 함양군수, 정윤백 부산보훈청장, 권진현 함양교육장, 현동준 진주보훈지청장, 백구종 함양경찰서장, 정병국 하동인 한학교수
추진위원
김상수 함양읍 현 문화원장, 박석규 수동면 평통자문위원의장, 정순룡 함양읍 전 도교육위원회 의장, 정순민 수동면 유도회 회장, 강봉기 함양읍 전 교장, 임채석 수동면 유도회 부의장, 김정식 전 교장, 정종환 지곡면 동래정씨 종친회, 하두현 함양읍 전 도의원, 조용진 지곡면 노인회 함양군지회장, 정순백 함양읍 성심병원장, 정순오 지곡면 전 회사장, 김성진 함양읍 문인협회 회장, 정대갑 지곡면 유도회 임원, 노두섭 함양읍 전 교원, 조내홍 지곡면 유도회 임원, 임현철 함양읍 전 군의원, 박인호 안의면 전 교원, 전용인 함양읍 바르게살기사무국장, 유병렬 안의면 전 산림조합 상무, 전오식 함양읍 전 교장, 박용봉 안의면 전 교장, 정덕성 함양읍 전 공무원, 이동원 안의면 현 교장, 서문철 마천면 전 면장, 오재진 서하면 노인회 회장, 임명근 마천면 전 향교전교, 전병원 서상면 유림회, 정성화 휴천면 문화위원, 홍덕룡 서상면 전 군의회 의장, 김태석 휴천면 전 면장, 정순홍 백전면 유림 전 농협조합장, 서두석 유림면 유도회 임원, 박병문 백전면 우체국장, 임학문 유림면 전 면장, 박순호 병곡면 농협이사, 정웅상 수동면 독립운동유공유족회장, 양노석 병곡면 문화위원
고문
정용규 함양군수, 정윤백 부산보훈청장, 권진현 함양교육장, 현동준 진주보훈지청장, 백구종 함양경찰서장, 정병국 하동인 한학교수
추진위원
김상수 함양읍 현 문화원장, 박석규 수동면 평통자문위원의장, 정순룡 함양읍 전 도교육위원회 의장, 정순민 수동면 유도회 회장, 강봉기 함양읍 전 교장, 임채석 수동면 유도회 부의장, 김정식 전 교장, 정종환 지곡면 동래정씨 종친회, 하두현 함양읍 전 도의원, 조용진 지곡면 노인회 함양군지회장, 정순백 함양읍 성심병원장, 정순오 지곡면 전 회사장, 김성진 함양읍 문인협회 회장, 정대갑 지곡면 유도회 임원, 노두섭 함양읍 전 교원, 조내홍 지곡면 유도회 임원, 임현철 함양읍 전 군의원, 박인호 안의면 전 교원, 전용인 함양읍 바르게살기사무국장, 유병렬 안의면 전 산림조합 상무, 전오식 함양읍 전 교장, 박용봉 안의면 전 교장, 정덕성 함양읍 전 공무원, 이동원 안의면 현 교장, 서문철 마천면 전 면장, 오재진 서하면 노인회 회장, 임명근 마천면 전 향교전교, 전병원 서상면 유림회, 정성화 휴천면 문화위원, 홍덕룡 서상면 전 군의회 의장, 김태석 휴천면 전 면장, 정순홍 백전면 유림 전 농협조합장, 서두석 유림면 유도회 임원, 박병문 백전면 우체국장, 임학문 유림면 전 면장, 박순호 병곡면 농협이사, 정웅상 수동면 독립운동유공유족회장, 양노석 병곡면 문화위원
님의 령전(靈前)에
겨레의 함성(喊聲)이 이 강산(江山)을 뒤흔들었던
차가운 서리 내린 기미년(己未年)의 봄
조국(祖國)의 깃발을 들고 님은 일어섰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젊음을 쏟아
꿋꿋한 정신에 피와 땀으로 한데 얼려진
오 그님은 정규환 열사(鄭圭桓 烈士)
용기(勇氣)여 정열(情熱)이여, 뜨거운 충절(忠節)이여
피 끓는 청춘(靑春)의 몸과 마음 다 바치고
배달의 나라 무궁화(無窮花)꽃 가지마다
서리서리 맺힌 울분(鬱憤) 통한(痛恨)으로 남겨두고
님은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질게 물어뜯던 살쾡이 이빨 사이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맨 80여성상(餘星霜)
이제사 님의 혼(魂) 고향(故鄕)에 돌아와
이 언덕 송백(松柏)의 굳은 절의(節義)
어릴적 천렵(川獵)하던 금호강(金湖江)을 굽어보면
금구엄수혈(金龜欽水穴)의 명당(明堂) 유택(幽宅)을 마련했습니다
살쾡이 만행(蠻行)에 묻혀버린 그 보배
돌에 새겨 비석(碑石)으로 세우고
한아름 꽃다발을 령전(靈前)에 바치오니
별빛이 되어 달빛이 되어
동방(東邦)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을 밝게 비춰 주소서
님의 유택(幽宅)에 송백(松柏)을 심어놓고
눈서리 찬바람에 꿋꿋이 서 있을적에
배달의 아들 딸 님보듯 하오리다
2000년(경진) 6월 일
문인협회 회장 김성진 짓고
건립 조카 정백석 쓰다
이곳 지사영혼은 2005년(을유) 11월 11일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
(애국지사 3묘역 제224호)
겨레의 함성(喊聲)이 이 강산(江山)을 뒤흔들었던
차가운 서리 내린 기미년(己未年)의 봄
조국(祖國)의 깃발을 들고 님은 일어섰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젊음을 쏟아
꿋꿋한 정신에 피와 땀으로 한데 얼려진
오 그님은 정규환 열사(鄭圭桓 烈士)
용기(勇氣)여 정열(情熱)이여, 뜨거운 충절(忠節)이여
피 끓는 청춘(靑春)의 몸과 마음 다 바치고
배달의 나라 무궁화(無窮花)꽃 가지마다
서리서리 맺힌 울분(鬱憤) 통한(痛恨)으로 남겨두고
님은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질게 물어뜯던 살쾡이 이빨 사이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맨 80여성상(餘星霜)
이제사 님의 혼(魂) 고향(故鄕)에 돌아와
이 언덕 송백(松柏)의 굳은 절의(節義)
어릴적 천렵(川獵)하던 금호강(金湖江)을 굽어보면
금구엄수혈(金龜欽水穴)의 명당(明堂) 유택(幽宅)을 마련했습니다
살쾡이 만행(蠻行)에 묻혀버린 그 보배
돌에 새겨 비석(碑石)으로 세우고
한아름 꽃다발을 령전(靈前)에 바치오니
별빛이 되어 달빛이 되어
동방(東邦)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을 밝게 비춰 주소서
님의 유택(幽宅)에 송백(松柏)을 심어놓고
눈서리 찬바람에 꿋꿋이 서 있을적에
배달의 아들 딸 님보듯 하오리다
2000년(경진) 6월 일
문인협회 회장 김성진 짓고
건립 조카 정백석 쓰다
이곳 지사영혼은 2005년(을유) 11월 11일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
(애국지사 3묘역 제224호)
愛國志士 鄭圭桓 事蹟碑(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정규환 선생이 사시던 집은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221이다. 상백마을은 사적비에서 바로 옆이었다.
함양군 안의면 이전리 458 도로변 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를 찾았다.
愛國志士 鄭圭桓 事蹟碑(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愛國志士 鄭圭桓 事蹟碑(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이 고장에서 태어나 나라 위해 순국하신 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성은 정이요, 이름은 규환이며 본관은 동래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나라 잃은 서러움이 가슴에 맺혀 21세의 짧은 생애는 오직 내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에 불타 누구의 선도를 기다릴 것 없이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려고 할 즈음 사나운 광풍으로 무참히 꺾겨 끓는 피 한 목숨을 나라에 바쳤으니 장렬하도다. 공은 어릴 적부터 천자가 남다르고 기질이 강직하며 영민하였다.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할 때 문리를 일찍 깨우쳐 신동이라 칭송을 받았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이 고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6세 되던 해 서울의 휘문의숙에 재학 중 1919년 기미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공은 학업을 중단하고 이 운동에 동참코자 고향으로 달려와 동지 고재경 정재완 등과 모의하여 동년 3월 25일 안의장날을 기해 장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두 고창키로 계획하고 격문을 요소에 써 붙이고 주민들에게 거사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던 중 계획이 누설되어 왜경의 수핵이 시작되니 거사는 좌절되고 또한 각지에서 들려오는 왜경의 악랄한 만행에 독립의 염원은 더욱 불타올라서 흉악한 무리들과 맞설려면 오직 투쟁뿐이라 결심하고 독립결사대를 조직하여 주민들을 은밀 계몽하고 동지 규합에 힘쓰면서 동년 11월 15일 자정 무렵 관내의 어느 재산가에게 독립운동군 자금으로 금 일만원의 찬조를 요구한 사실이 탄로되어 3인 모두 체포되니 공은 결사대 조직의 주모자이며 자금책과 격문 선포문 작성의 주범이라는 죄목으로 왜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사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1920년 1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보안법위반 및 강도죄를 적용하여 3인 모두 징역 2년이 선고
되어 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원심대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신음하다가 1924년 갑자 음 2월 24일 21세의 젊은 나이로 철천지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었다. 혈맹 3인 중 정재원도 고문으로 폐인이 되어 4년 후에 숨져갔고 고재경은 왜경의 감시와 자해를 견디지 못해 가족을 거느리고 어디론가 잠적하여 행방이 묘연하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지사 정규환의 선대는 신라때 호장 휘 회문을 시조로 의정부 좌찬성 대제학 익정절공 휘 구가 중조이시며 입향조 휘 성규는 문무겸전하여 어모장군이시며 14대조이시다. 12세조이신 행촌공 휘 유문은 현신교위시니 임란때 창의하여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같이 왜적을 토벌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황석산성에 들어가 안의현감 곽준 함양군수 조종도 양공과 같이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니 아우인 유무 유영 두 분과 아들 이선도 함께 순절하였다. 이와같이 공은 선대로부터 위국충절의 피를 이어받은 명문의 후예이다. 조부님은 휘 수갑이시고 아버지는 휘 문섭이시며 호는 아석이니 한말에 통훈대부 행궁내부주사이시며 어머니는 여흥민씨이시니 백구공의 따님이시다. 공은 5형제 중 막내로 위로 규상 규태 규백 규로 네 분 형이 계셨고 1903년 월 11일 이 고을 상백마을에서 태어나셨다. 공이 가신지 80여년의 시공이 지난 지금 공의 그 장한 실상을 밝히고자 공의조카 백석이 10년간을 하루같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아쉽게도 1심 판결문이 소실되어 확인할 길이 없어 애태우다가 3.1운동사와 정부기록 보존소에 소장된 독립 운동 기록문과 복심법원 판결문 등에 공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 비로소 독립운동의 공적이 인정되어 정부에서 1999년 8월 15일 제1809호로 건국포장이 서훈되어 가슴에 맺힌 한을 풀게 되었다. 공의 그 위대한 자취를 후세에 전하고자 백석보가 종방들과 뜻을 모아 2000년 4월 5일 이곳 안의면 이전리 산 459번지에 공의 묘소를 보수 단장하고 그 옆에 사적비를 세우기에 앞서 부족한 나에게 글을 청하기에 선열의 위업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후생의 도리라 생각되어 위와 같이 쓰고 명하나니
오 대한의 아들 정규환은 이곳에 영원히 살아 있으니 겨례의 가슴마다 찬란한 태양같이 살아 있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꽃다운 젊음을 바친 당신께서는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조국을 수호하소서.
서기 2000년 경진 6월 일 하동 정병국 짓고 하동 정기상 쓰다
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건립추진위원장 경주 김상수
오 대한의 아들 정규환은 이곳에 영원히 살아 있으니 겨례의 가슴마다 찬란한 태양같이 살아 있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꽃다운 젊음을 바친 당신께서는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조국을 수호하소서.
서기 2000년 경진 6월 일 하동 정병국 짓고 하동 정기상 쓰다
애국지사 정규환 사적비 건립추진위원장 경주 김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