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447-3
- 탐방로그
- 순국선열 송문호 선생과 그 동생분이신 송길호 선생의 비석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서기 1972년 10월 초 7일
건립추진위원 일동
자 영상 영갑
자 영수 영식 영규
건립추진위원 일동
자 영상 영갑
자 영수 영식 영규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447-3 덕적동 마을회관 옆 열사 송문호, 의사 송공 길호 비를 찾아왔다.
옆에 있는 송영수, 박승만, 송장호 3분의 송덕비
비문을 읽어보니 송길호 애국지사 아드님이 마을 발전에 도움을 준 송덕비이다.
비문을 읽어보니 송길호 애국지사 아드님이 마을 발전에 도움을 준 송덕비이다.
恩津 宋永壽, 密城 朴承萬, 恩津 宋張鎬 頌德碑
(은진 송영수, 밀성 박승만, 은진 송장호 송덕비)
(은진 송영수, 밀성 박승만, 은진 송장호 송덕비)
고언에 이르기를 재산이란 모으기 보담 쓰기가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 얼마나 무게있는 격언이랴. 고로 그 재물을 보람있게 선용하는 자는 사회에 경앙을 받는 선인이 되는 것이요 헛되게 오용하는 자는 남의 지휘를 받는 우부가 되는 것이다. 연즉 이 비의 주인공인 3인은 과연 그 재물을 선용할 줄 아는 선인들이라 하여 과언이 아닐 줄 믿으며 이에 그의 경력을 열서한다. 송영수는 은진후인
의사 길호씨의 이들이요 박승만은 밀성후인 인회씨의 아들이요 송장호는 은진후인 좌도씨의 아들로서 각각 그의 부조의 세장인 본군 가야면 사내리에서 출생하여 농업에 종사해 오든 바 약관시절에 이르러 3인 공히 뜻한바 있어 후선태지를 떠나 이역 일본에 도거하여 춘풍추우 수십성상간에 허다한 고난을 겪으면서 근검히 노력해 온 결과 유지자 필요성으로 지금은 당당 거재벌의 위치에서 독실한 사업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간 종종 고국에 내왕하면서 각자 선사에도 진력한 바 있었거니와 금번엔 향리 주민의 숙원인 전화사업에 자진 거재를 희사하여 사내리 전역 일백여호에 광명의 새 시대를 보게 하였으니 3씨의 미거는 실로 사회우부에 귀감됨직하도다. 이에 리민 일동은 그 빛나는 공덕을 돌에 새겨 길이 기념키로 결의하고 나에게 그 기실문을 청하기로 고사한 남어지 전언에 의거하여 여우약식하는 바이다.
서기 1975년 12월 일
서기 1975년 12월 일
함안 조광제 식이 병서
사내리 리민 일동 건립
사내리 리민 일동 건립
순국선열 송문호 선생과 그 동생분이신 송길호 선생의 비석이다.
烈士 恩津宋公 文鎬, 義士 恩津宋公 吉鎬 之碑
(열사 은진송공 문호, 의사 은진송공 길호 지비)
(열사 은진송공 문호, 의사 은진송공 길호 지비)
烈士 恩津宋公 文鎬, 義士 恩津宋公 吉鎬 之碑
(열사 은진송공 문호, 의사 은진송공 길호 지비)
(열사 은진송공 문호, 의사 은진송공 길호 지비)
조국 잃은 이천만 민족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하늘이 떠나가고 땅이 꺼지도록 외치며 온 세계에 우리의 주권을 선언하고 적수공권으로 일제의 총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항쟁타가 야만적 일경의 만행에 희생된 애국선열의 장거가 삼천리 강토를 피로서 물드렸든 기미년 3월 당시 이 고장 함안에서도 3월 18일 음 2월 17일 함안읍과 3월 20일 음 2월 19일 군북에서 각각 민중봉기가 일어
나 많은 우리 고장의 애국열사들이 순절하셨으며 여기 그 위업을 새기고저 하는 열사 송공 문호와 의사 송공 길호 두 형제분도 3월 20일 군북 시일에 수천 군중의 선두에 서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일경의 주재소를 탈취하려고 전진타가 일경의 악랄하고 야만적인 무차별 총격에 열사 송공 문호는 조용효 이재형 조주규 박상엽 조용대 조용섭 이원필 김우곤 박주범 등 제 열사와 함께 현장에서 장렬한 순절을 하셨으며 의사 송공 길호는 복부에 흉탄이 관통하여 심한 상처를 입고 마산병원에 3개월 치료를 받고 귀가하야 여생을 신고타가 40성상의 병상에서 망국의 한을 가슴 깊이 간직하여 은거하시다 경자 정월 2일 향년 80세로 순국의 영령이 되셨으며 또한 거사 전에는 일경이 찾아와 갖인 수법과 감언으로 회유코저 하였으나 공은 끝내 거절하시고 삼봉산에서 피신 생활을 하시면서 때를 기다려 마침내 기미년 3월의 민족 거사에 이 고장 함안의 민중봉기의 선봉에 나서신 애국충절을 천추에 기리 남을 구국일념의 민족정기의 표상임에 당시의 참된 모습과 사실을 여기에 새겨 열사 송공 문호와 의사 송공 길호 두 형제분의 순국의 얼을 추모하여 의사 송공 길호의 장남 영수가 비를 세우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