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산222
- 탐방로그
- 항일투사 30인 의총으로 알고 왔는데 17인 의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비문에도 앞면에는 '17인 의총', 뒷면에는 '30인 의총'으로 되어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유관 기관 및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항일투사 30인 의총으로 알고 왔는데 17인 의총으로 되어있다.
항일투사 30인 의총
일제 강제병합이 있기 2년 전 1908년 2월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며 결사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 항일 무명 영웅 30인이 이곳 지리산 화개면 의신마을 공동산에 잠들었다. 이곳에 묻힌 항일의병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맹활약하다 1908년 1월 말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의병들은 마을 서당에 본부를 두고 배명고지(지리산 역사관 뒤 능성)에 초병을 세우고 벽소령 길목을 경계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베 조각을 나누어 주면서 토시와 길목(발 등 덮개)을 만들게 하고 음력 설을 쇠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월 2일(음력 설날 아침) 승려로 가장한 일본군이 철골(용화정사 터)에 있는 마을 주막으로 오는것을 발견하고 발포하였으나 일본군의 유인 작전이었다. 일본군(변장대)은 마을에 침투하여 의병을 향해 기습 공격을 했다. 항일 의병 80여 명 중 50여 명이 전사하고 생존자는 산청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 때 주민 일부도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
이후 의신마을 주민들은 항일 의병의 시신을 수습하여 산제등, 전평전 및 계곡 산 허리에 묻어 주었으며 이 곳 30명의 무명 항일 영웅들의 묘는 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봉분이 훼손됨에 안타까워 하동 군민의 정성을 모아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삼가 항일 의병 비를 세웁니다.
일제 강제병합이 있기 2년 전 1908년 2월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며 결사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 항일 무명 영웅 30인이 이곳 지리산 화개면 의신마을 공동산에 잠들었다. 이곳에 묻힌 항일의병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맹활약하다 1908년 1월 말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의병들은 마을 서당에 본부를 두고 배명고지(지리산 역사관 뒤 능성)에 초병을 세우고 벽소령 길목을 경계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베 조각을 나누어 주면서 토시와 길목(발 등 덮개)을 만들게 하고 음력 설을 쇠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월 2일(음력 설날 아침) 승려로 가장한 일본군이 철골(용화정사 터)에 있는 마을 주막으로 오는것을 발견하고 발포하였으나 일본군의 유인 작전이었다. 일본군(변장대)은 마을에 침투하여 의병을 향해 기습 공격을 했다. 항일 의병 80여 명 중 50여 명이 전사하고 생존자는 산청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 때 주민 일부도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
이후 의신마을 주민들은 항일 의병의 시신을 수습하여 산제등, 전평전 및 계곡 산 허리에 묻어 주었으며 이 곳 30명의 무명 항일 영웅들의 묘는 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봉분이 훼손됨에 안타까워 하동 군민의 정성을 모아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삼가 항일 의병 비를 세웁니다.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 무명항일투사 공동무덤(항일투사17인 의총)을 찾아가고 있다.